타케히카 - The Disintegration of the Persistence of Memory
타케히카 - The Disintegration of the Persistence of Memory
2015년 12월 23일
글을 시작하기 전에:
이 단편은 타케히카 수위물 The Persistence of Memory (기억의 지속)의 다음 이야기입니다.
후편이니만큼 수위가 조금 더 올랐으니, 캐붕 및 수위물을 안좋아하시는 분들은 조심해주세요.
덤) 이 긴 제목은 "기억의 지속의 해체"라는 뜻으로,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자신의 가장 유명한 그림인 "기억의 지속"을 1945년에 다른 관점으로, 다시 한번 그린 그림의 제목입니다. 전편에서 뭉뚱그려 넘어갔던 부분을 좀 더 자세히 (...) 해체해서 본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을 붙였습니다.
***
"히카리 쨩..."
맞닿은 입술을 조심스레 뗀 타케루가, 거친 숨과 함께 꼬옥 맞잡고 있던 히카리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쥐며 말했다.
이미 그의 머리는 물기 하나 없었고, 그녀가 걸치고 있던 타케루의 셔츠도, 그녀가 입고 왔던 옷도 그의 수건과 함께 한쪽으로 내팽겨쳐져 있었지만- 두 남녀는 그 이상으로 발을 내딛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괜찮겠어?"
마른 침을 삼킨 타케루가, 저도 모르게 그녀의 드러난 쇄골을 엄지 손가락으로 훑으며 물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듯, 그의 눈은 그녀의 깊은 눈동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몇번을 물어볼 셈이야, 타케루 군,"
똑같이 그의 사파이어빛 눈을 바라보던 히카리가, 쿡- 하고 작게 웃으며 말했다. 어쩌면, 지금 상황은 그들의 관계에 있어서 너무나도 급작스런 전개일수도 있음은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동시에 이 마법같은 달콤함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또한 히카리를 강하게 사로잡고 있었다. 이것이 꿈이라면, 차라리 깨지 않기를.
"우리 이제, 어른이잖아."
그녀의 대답에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입을 맞춘 타케루는, 자신의 손에 쥐여져 있는 분홍색의 포장지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책상 밑 서랍을 거칠게 열어 가져온 그것은, 다름아닌 그의 형 야마토가 그에게 준 선물이었다.
"이제 너도 알만큼 알 나이니까, 특히 조심해야지."
"아, 형-!"
작년 크리스마스 밤, 토마토보다 빨갛게 달아오르는 타케루를 보며 무척이나 즐거워하던 야마토가 그에게 억지로 넘겨준 것은, 바로 콘돔 한 박스.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그에 맞는 선물을 타이치와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준비했다며 간신히 웃음을 참는 야마토를 보고 있자니, 그 둘이 이 선물을 준비하며 얼마나 배꼽을 잡고 웃었을 지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이 되던 타케루였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 그 포장지를 바라보고 있으니, 왜인지 지금 자신이 그 선물을 누구와 사용하려고 하는지 알게 된다면 타이치가 어떻게 반응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케루... 너...
웃음이 터져나옴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울려오는듯한 오싹한 목소리를 뒤로 하고, 타케루는 오른손을 들어, 하얗게 빛나는 앞니의 도움을 받아 포장지를 뜯었다. 내용물을 꺼내고 포장지를 던져버린 그는,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히카리에게 다시금 입을 맞췄다.
"천천히 할테니까..."
***
삐리리리리리-
해가 뉘엿뉘엿 지는 초저녁, 방 안에 울려퍼지는 전화기 소리에 타카이시 타케루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옆에 누워서 자고 있는 히카리를 본 타케루는,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혹여 옷을 벗고 있는 그녀가 감기라도 걸릴까 이불을 조심스럽게 덮어주고는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츄리닝 바지를 걸쳐입고, 벨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린 그는, 히카리의 앙증맞은 핸드폰이 부르르 떨며 악을 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가 그녀의 핸드폰을 집어들기도 전에 벨소리는 끊겼고, 그제서야 타케루는 창문에 부딪히는 굵은 빗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히카리의 전화기를 내려다 본 그는, 피가 온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창백해진 그 손에 쥐여진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 19통: 타이치 오빠 라는 글자가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랴.
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핸드폰은 다시 울리기 시작했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핸드폰에는 "타이치 오빠"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그 때, 침대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비비며 "타케루 군-" 이라고 잠긴 목소리로 말하는 히카리를 돌아본 타케루는, 아무 말 없이 그녀에게 전화기를 넘겨줬고, 반쯤 감긴 눈으로 타케루를 바라보던 히카리의 눈도 번쩍 뜨이고야 말았다.
"여- 여보세요-"
히카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자마자, 타이치의 목소리가 핸드폰을 찢고 나올듯 터져나왔다.
"도대체 전화도 안 받고 뭐하고 있는거야! 걱정했잖아! 태풍이 부는데!"
"엣- 태풍이라니?"
"뭘 하고 있었길래 밖이 저렇게 난리인데 모르고 있었던거야?"
그제서야 히카리는 타케루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고- 점심까지만 해도 조용하고 따뜻했던 날씨는 어디 가고, 강한 바람과 거센 빗줄기만이 창문 밖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히카리?"
"아, 그- 타- 타케루 군네 집에서 영화를 보다 같이 깜빡 잠이 들어서..."
히카리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거짓말을 황급하게 내뱉었다. 타케루와 히카리가 사귀고 있는 것은 타이치도 알고 있었지만, 몇달 전에 그들이 그 사실을 모두에게 말했을 때의 타이치의 리액션을 생각하면, 오늘 그의 집에서 일어난 일에서는 절대 말하지 않는게 현명했을 테니까.
뭐, 그래도 반은 사실이지만...
히카리가 누구에게랄것도 없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어휴.. 알았어, 엄마한테 이미 말해뒀으니까, 타케루 어머니께 물어봐서 가능하면 오늘은 거기서 자고 와, 알았지? 이 날씨에 또 억지로 집에 오려다간 클난다!"
타케루는, 타이치의 목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더니 히카리에게 고개를 끄덕이곤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러 거실로 나갔다. 한편, 타이치의 설교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던 히카리는, 자신이 방문을 열고 나가는 타케루의 벗은 등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얼굴이 붉어지고야 말았다.
"... 서로 다른 방에서 자는 거 명심하고. 조심해서 있다 와, 알았지?"
"아- 응, 알았어 오빠, 고마워. 걱정시켜서 미안해. 내일 봐!"
휴. 히카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자마자,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는 타케루가 알 수 없는 미소를 띄며 방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네- 네, 알겠어요. 나도 사랑해요 엄마, 조심하세요."
전화를 끊은 타케루는, 환하게 웃어보이며 침대에 앉아있는 히카리 옆에 털썩- 하고 걸터앉았다.
"오늘 밤 자고 가도 된대. 이럴 때 집에 보내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하셨어."
"오시면 고맙다고 말씀드려야겠네. 근데 왜 이렇게 웃고 있어, 타케루 군?"
"아 그게, 비 때문에 고속도로가 임시로 폐쇄되었다나봐. 그래서 동료분의 집에서 묵고 가신다고, 오늘밤은 우리 둘이서만 있으라고 하시길래."
"엣, 그러면-"
히카리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타케루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입을 맞췄다. 천천히 입술을 떼며 숨을 들이쉰 타케루는, 미소를 지으며 히카리에게 다시 다가갔다-
"오늘은 우리만의 밤이야, 히카리 쨩." 라는 말을 속삭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