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사돈 - 놀이공원
겹사돈 - 놀이공원
2016년 10월 12일
그들은 연인이다. 채 세 달도 되지 않은 풋풋한 관계. 타카이시 타케루와 야가미 히카리- 모두가 그들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될 것이라고, 실은 이미 사귀고 있는 관계임이 아니냐고 묻곤 했었지만, 정작 그들이 진짜 사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들의 손윗 형제들 때문이었으리라- 타케루가 히카리랑 사귄다는 것을 알게 된 타이치와 야마토의 표정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그러니 우리가 유리한 고지를 취하기 전까지는 비밀로 해두자, 그것이 그들이 이 놀이동산에 온 이유였다.
티켓을 구입하는 히카리와 타케루를 보며 어색하게 서 있는 타이치와 야마토. 타케루와 히카리는 그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있을거라 생각하며 서로 키득거렸다. 그래, 타이치와 야마토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서로를 좋아했음이 틀림없었다. 늘 투닥거렸지만 그 이면에는 서로를 향한 감정이 없을리가 없었겠지- 그래서 늘 동생들은 타이치와 야마토를 놀리곤 했었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 부쩍 잦아진 그들의 이상행동. 이것이 타케루와 히카리가 노리는 유리한 고지였다. 모든 연인들이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한다는 놀이공원- 그랬기에 같이 가자는 제안을 타이치와 야마토도 수락한 것일테고, 동생들은 여기서 그 둘이 사귄다는 확실한 못할 증거를 찾을 셈이었다.
"그래서 뭐 할까?"
동생들을 따라오긴 했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할 지 감을 못 잡곘는 듯 어색하게 서 있는 타이치와 야마토를 바라보던 히카리가 키득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건 어때?"
전국구 급으로 흉악하기로 악명 높은, 최고 높이를 자랑하는 롤러코스터- 타이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자 마자 얼굴이 팍 구겨지는 야마토를 보건대, 동생들은 왜 타이치가 저것을 선택했는 지 알 것 같았달까. 그렇게, 롤러코스터를 타는 내내 얼굴 거죽이 뜯겨나갈만큼 야마토한테 잡아당겨져 얼얼해진 뺨에 갓 사온 슬러시를 대고 있는 타이치를 필두로, 그들의 놀이공원 체험기는 막을 올렸다.
사격장에서 고작 열쇠고리 하나밖에 히카리에게 쥐어주지 못한 타케루를 보며 코웃음치고는 놀라운 사격 솜씨로 거대 곰인형을 따내 타이치에게 던져준 야마토. 타케루가 사온 구슬 아이스크림이 고작 두 개 뿐이라 한 컵을 가지고 네가 더 많이 먹었니 내가 더 적게 먹었니 투닥이는 둘. 광대가 히카리에게 건네준 고양이귀 머리띠를 그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려 할 때 맞춰 야마토에게 씌여주기까지 한 타이치까지-
평생 추억으로 남아도 손색 없을 일들이 있었지만, 정작 아직도 히카리와 타케루는 저 둘이 사귄다는 명백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벌써 날은 저물어 가고 있었고, 결국 승부를 볼 곳은 단 하나- 귀신의 집 뿐이었다.
"이야, 이거 꽤 으시시한데."
두 명이 짝이 되어, 각 팀마다 촛불 하나씩을 들고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길을 지나가는 것이 목표. 먼저 출발한 타케루와 히카리는 뒤에서 따라오는 타이치와 야마토를 힐끔힐끔 바라보았지만, 하나도 안 무섭다는 듯 주머니에 손을 넣고 휘파람을 부는 저 둘은 허세만 가득할 뿐 사귄다는 티는 죽어도 내지 않을 듯 했다.
그 순간 갑자기 튀어나온 귀신 때문에 깜짝 놀란 히카리-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 했지만, 다행히도 타케루의 순발력 덕에 그녀를 잡을 수 있었다. 타케루 군 빠르네, 라고 웃는 히카리에게 누구 남자친구인데- 라고 말하던 타케루는 아차 싶어 황급히 입을 막았지만, 뒤돌아보며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가 들은 것은 달려오는 타이치의 목소리였다.
"으아아아아아-!!!!!"
마치 귀신 중의 귀신을 본 듯 뛰쳐오는 타이치를 보며 놀랐는지 야마토도 저도 모르게 뛰기 시작했고, 재빠르게 자신들을 지나 저 멀리로 사라지는 타이치와 야마토를 동생들은 간신히 따라잡으려 헉헉대며 뛸 뿐이었다.
"헉- 헉- 아니- 애인이 뛰어오는데 도망가는 놈이 어딨냐!!"
"헉- 이 네- 헉- 놈이- 눈에 불을 켜고 뛰어오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이거다! 차오르는 숨을 고르는 와중에도 티격태격대는 타이치와 야마토의 말을 주워담던 히카리가 생각했다. 한숨을 한번 깊게 내쉬고, 다 알았다는 듯 히카리가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지만, 야마토도 할 말이 있는 듯 마른 침을 삼키며 동생들을 돌아보았다.
"오빠들 사귀죠!"
"너네 사귀지!"
엣- 서로 놀란 듯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는 네 명 사이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
그들은 연인이다. 사귀게 된지 이제야 반년을 바라보는 아직 파릇한 관계. 야가미 타이치와 이시다 야마토- 어릴 때부터 투닥이던 그들이, 방과 후 어느 날 타이치가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널 좋아해. 라는 한 마디로 연인이 되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아니, 애초에 그들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자신들을 늘 놀리던 동생들 때문- 저 두 녀석이 서로를 좋아하고 있는게 분명할텐데, 저 녀석들을 역으로 놀릴 거리가 있어야 우리가 사귄다는 것도 얘기할 수 있지, 그것이 그들이 동생들을 따라 이 놀이동산에 온 이유였다.
티켓을 구입하는 동생들 뒤에 서 있는 타이치와 야마토는 작은 목소리로 여기서라면 저 둘이 사귀고 있던지, 아니면 하다못해 서로를 향한 감정이 있음을 밝혀내고야 말겠다고 동의했다. 얼핏 보면 늘 그랬던 것 같지만, 타케루와 히카리가 요즘 따라 더욱 더 서로와 붙어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을 알아차린 것은 비단 타이치와 야마토 뿐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부모님들마저 알아차릴 정도였으니까.
아무리 잘 속이려고 해 봤자 형과 오빠 눈을 속일 순 없단다, 라는 듯 흐뭇하게 미소를 지은 야마토와 타이치는 동생들에게 티켓을 건네받아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놀이공원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었다- 애초에 연인과 함께 놀이공원에 오는 것은 모두의 로망.비록 서로와 손을 잡는다거나 하는 행동은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시간을 같이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만족하고 있었다. 물론, 동생들을 감시하는 일을 게을리 할 리는 없지만 말이지.
페이스 페인팅을 한번 받아보자며 히카리를 꼬셔서 그녀의 코를 중심으로 얼굴 전체에 그려진 반짝이는 나비를 보며 웃던 타케루. 롤러코스터가 천천히 정상을 향해 올라가자 손을 부여잡는 둘 (야마토는 그것을 지적했지만, 타이치는 쟤네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지 않았냐며 고개를 저었었다), 이상한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파티 모자를 집어들고는 타케루 군한테 가장 장 어울리는 모자를 찾았다며 씌워주곤, 이건 나한테도 조금 너무한 거 아냐? 라는 타케루의 뺨을 쿡쿡 찌르는 히카리-
그 외에도 많았겠지만, 자신들도 신나게 즐기느라 놓친 것들이 많았을 터. 하는 행동은 이미 연인 관계인 것 같은데, 그래도 저 둘이 사귄다는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한 타이치와 야마토는 마지막 승부처로 귀신의 집을 택했다.
"우린 뒤따라 갈테니까, 먼저 가."
일렁이는 촛불 속에서, 팔짱을 끼고 멀어져가는 타케루와 히카리의 얼굴만이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촛불을 들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걸어가는 야마토를 선두로, 그 둘도 걸음을 재촉했지만 그렇게 무섭지도 않은 데다가 거리까지 떨어져 있으니, 여기서 어떻게 승부를 보나.
그런 생각에 다다른 타이치는 곧 갑자기 튀어나와 야마토를 깜짝 놀래켜 줄 준비를 하며, 은근슬쩍 야마토와 거리를 벌렸다. 어둠 속에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던 타이치- 하지만 그 순간, 타이치는 모두가 지나갔을 거라 생각하곤 건너편으로 넘어가려던, 화장도 코스튬도 반쯤 벗겨진 귀신과 마주했다.
기괴하게 삐걱이는 소리와 가짜 같은 비명 소리만이 울려퍼지던 그 귀신의 집에서 이게 웬 봉변인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전력으로 뛰쳐나간 타이치는 저 멀리에서 야마토를 보고 안심했지만, 자신을 보고 놀라 도망가는 야마토 덕에 타이치는 덩달아 귀신의 집 밖까지 뛰어나가고야 말았다.
"헉- 헉- 아니- 애인이 뛰어오는데 도망가는 놈이 어딨냐!!"
아차. 자신을 보며 도망가는 야마토가 너무 어이 없어 무심코 내뱉은 말이지만, 이미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법. 슬쩍 돌아본 히카리가 미소를 짓고 있자 타이치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그 때 야마토가 히카리와 동시에 외친 말은 모두를 정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게 하는 데 충분했다.
"오빠들 사귀죠!"
"너네 사귀지!"
**
놀이공원 내의 한 식당 안. 가만히 앉아 서로의 눈을 피하는 네 명 사이에는 쎄한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거대한 곰돌이의 목을 팔로 잡고 있는 타이치, 아직도 아까 타이치가 반 억지로 씌워놓은 고양이귀 머리띠가 반쯤 흘러내린 것도 모르는 듯 마른 침을 삼키는 야마토. 히카리가 사 준 파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시선을 피하는 타케루, 반쯤 지워진 페이스 페인팅이 무색하게 정적을 지키고 있는 히카리.
"그래서... 언제부터 알았어요?"
오랜 침묵 끝에 마침내 타케루가 입을 열었다.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서로가 잘 알고 있었으랴- 미간을 주무르던 야마토는 고개를 흔들며 타케루의 질문에 답을 해 주었다.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러냐? 너희가 스파이 같은 거 안하는 게 다행이야, 진짜. 어쩜 그렇게 티가 나냐고!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 단 한 명도 없었을 거다 진짜!"
야마토의 말 이후 다시 감도는 정적. 다음은 그들의 차례였고, 너흰 언제부터 알았는데? 라는 타이치의 물음에는 히카리가 대신 답을 해 주었다.
"미미 상 주도로 저희 모두 내기에 돈을 걸었는걸요, 오빠들이 사귀고 있다는 걸 언제 밝힐까 하고. 다이스케 군 마저 둘은 중학교 때부터 그런 낌새가 보였다고 그러던데."
아, 그랬구나. 헛웃음이 나오리만치 어색한 단말마. 참 웃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모두가 자신들의 관계를 알고 있는 데 자신들은 잘 숨기고 있었던 것 마냥 상대의 관계나 파헤치려고 하고 있었으니-
"정말, 예전부터 너희는 어쩜 사귀나 마나 하는 짓이 똑같냐."
"그건 형들도 마찬가지에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터져버린 웃음은, 도통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