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단편

타이코시 - 술

Doctor Box 2016. 1. 4. 14:25

타이코시 -

2016년 1월 3일


"코시로오오오오오오-!"


얼굴이 새빨개진 야가미 타이치가 술 냄새를 잔뜩 풍기며 투정을 부리자, 모든 걸 다 안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이즈미 코시로는 가만히 그를 무릎 위에 앉혀놓고 쓰다듬어 주었다. 또다시 여자친구와 헤어진 것인지, 여동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술을 있는대로 들이킨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코시로를 찾아와 있었다.


늘 그런 식이었다. 완벽한 듯, 결점 하나 없어보이는 듯한 코시로와 헛점 많아보이는 타이치. 납득이 갈 것 같으면서도 가지 않는 그들의 우정은 얼핏 보면 일방적이었지만, 타이치와 코시로를 같이 아는 주의의 사람들에겐 그들만큼 끈끈하게 맺어진 친구들도 또 없었을 것이다.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구러눈건뒈에..."


코시로는 눈을 감고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는 타이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의 쉴새 없는 입에서 퍼져나오는 술 냄새가 코 끝을 찔렀지만, 코시로는 말 없이 그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이윽고, 타이치가 코시로의 무릎 위에서 잠이 들면, 그는 조심스럽게 빠져나와 전화를 하곤 했다- 타이치 상이 잠들었으니, 데려가라고. 가끔은 히카리가, 또 가끔은 타케루나 야마토가 그를 데려갔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도 많았다. 


타이치 상이 이런 적이 한두번이어야지, 라고 늘 생각하는 코시로는 새근새근 잠이 든 타이치에게 이불을 덮어주곤 다시 연구 작업에 몰두하곤 했다. 다음 날 아침에 깨어난 타이치는 코시로에게 사과를 하고, 그는 늘 웃으며 타이치에게 냉수를 건네주었다- 다음에는 이렇게까지 마시지 말라고 충고하면서.


늘 그랬듯이.



***



딩동-


히카리가 미야코와 켄, 그리고 타케루와 영화를 보러 간다고 나간 어느 겨울 밤, 야가미 타이치는 자신의 집 앞에서 빨개진 얼굴로 입김을 내뿜는 이즈미 코시로를 발견했다. 


"타이치 상."


그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지만, 차가운 겨울 공기를 타고 타이치의 코를 간지럽히는 이 익숙하고 숨막히는 냄새는, 분명 술이었다. 높은 도수를 마신걸까, 아니면 그렇게 느껴질만큼 많이 마신걸까. 자신이 반팔 차림으로 문을 열었던 것도 잊어버릴 만큼 코시로의 술 냄새는 타이치의 코를 지나 그의 가슴을 찔렀다.


아니, 그건 술 냄새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피어난 연민의 감정이었는지, 무엇이었는지. 자신이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새해부터 술을 들이키고 코시로의 오피스에 찾아간 게 바로 엊그제인데, 이번에는 그 천하의 코시로가 술을 마시고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에 대한 충격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안도감이었을까.  


코시로가, 자신이 코시로에게 의지하는 만큼 자신을 의지해주기에 찾아왔다는, 그런 안도감.


제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코시로를 방 안에 들인 타이치는, 멍하니 자신의 장갑 낀 손만을 만지작거리는 코시로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가 왜 여기 왔는지, 타이치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게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코시로는 늘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다 아는 것 같았으니까. 자신이 무슨 일 때문에 여기에 왔는지, 왜 술을 마셨는지, 모두 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초등학교때부터 모험과 일상을 같이하며 코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술은 체질에 안맞는다고 하던 코시로가 왜 이렇게까지 마시고 자신을 찾아왔는지, 왜 또 그가-


타이치의 생각은 급작스럽게 코시로가 그에게 자신의 입술을 조심스럽게, 하지만 재빠르게 포개면서 끊겨버리고 말았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코시로의 입 안에 남아있던 알코올이 타이치의 입 안에서 맴돌았고, 타이치는 둘의 입술이 떨어지자 씁쓸함을 느꼈다- 이것이 술의 씁쓸함인지, 코시로의 마음 속 씁쓸함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저도 참 웃기죠, 타이치 상."


"코시로, 너 무슨-"


"이러지 말아야 한다고 곱씹어도, 전 결국 타이치 상을 좋아하나봐요."


울먹이는 코시로의 목소리에 타이치는 방금 전 입맞춤에 대한 얘기는 커녕, 숨소리조차도 함부로 내지 못했다. 알지 못했던 코시로의 약한 모습에, 또 방금 그가 했던 행동에 대해,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유유히 헤엄쳤지만, 그는 그 중 무엇도 감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이기적이라서 미안해요... 타이치 상이 헤어지는 것에 내심 기뻐하는 것도, 술 마시고 이렇게 찾아오는 것도... 추악한 걸 너무 잘 알지만..."


타이치는 조용히 훌쩍거리며 중얼거리는 코시로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자신의 무릎에 뉘였다. 계속 미안하다고,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코시로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을 뿐. 그가 그랬듯이, 지금은 코시로를 안정시켜주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이였다.


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