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켄 - Sleeping Beauty
이오켄 - Sleeping Beauty
2016년 1월 14일
중학교라고 달라진 점은 하나도 없었다- 선택받은 아이들 중에서 가장 막내였던 만큼 그와 그나마 가장 나이차가 덜 났던 다이스케들은 중학교때처럼 고등학교로 가 선배들이 입던 하늘색 교복을 입고 있었고, 아이들은 혼자 중학교에 남겨진 그를 위해 종종 그를 찾아오곤 했다.
그래, 중학교라고 달라진 점은 하나도 없었다.
히다 이오리는 이치죠우지 켄이 싫었다.
디지몬 카이저로써 사람을, 디지몬을 괴롭히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으면서 어둠의 씨앗 때문이었다고 얼버무린다고 해서 그의 죄가 씻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는 아직도 중죄를 저지른 죄인이었고, 그 짐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터였다- 그리고 이오리는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듯 했다. 하다못해 자신을 제외하고 가장 켄과 껄끄러운 사이를 유지하던 타케루조차도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를 켄 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디지털 세계에서 그가 한 짓을 아는 사람들 중에 그를 아직도 성으로 부르고 있는 건 이오리 혼자였다.
"좋은 아침이에요, 타케루 상, 다이스케 상."
"여어, 이오리!"
"이오리 군도 좋은 아침~"
등교길에 만난 다이스케와 타케루를 향해 반갑게 웃어보인 이오리는, 조금 전까지 그들과 대화하며 웃고 있던 켄이 우물쭈물하는 표정을 짓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은 이오리는, 곧이어 그에게로 다가가 팔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이치죠우지 상."
"어, 어어. 안녕, 이- 이오리 군."
당황스런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맞잡고 천천히 흔드는 켄의 어쩔 줄 몰라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통쾌한지. 그가 켄을 당황스럽게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모두들 대신 그에게 내리는 벌처럼, 속죄하라는 채찍질처럼, 이오리는 계속해서 켄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를 계속해서 쫓아다니고, 불편해하는 그와 일부러 단 둘이 대화를 할 기회를 노리는 나날들이 이오리에겐 만족스럴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자신이 켄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여름날, 다들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한 이오리가 먼저 도착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켄을 만나기 전까진.
정단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자수정 빛깔의 그 남자아이는, 나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시원한 벤치에 한쪽 다리를 끌어안고 조용히 졸고 있었다. 까딱이는 그의 고개는 그의 보랏빛 머리카락이 반쯤 가리고 있었고, 천천히, 하지만 깊게 숨을 내쉬는 그는 무척이나 평온해 보였다.
그런 그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오리는 다시금 화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렇게 편안하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저렇게- 저렇게나- 예쁘게-
예쁘게?
한 발자국 더 켄에게 다가간 이오리는, 오뚜기같은 그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날카로운 듯 온화한 눈매, 오똑 솟은 코, 축구를 하면서도 남들과는 다른 새하얀 피부, 그리고 앵두같이 꼭 닫혀있는 입술...
홀린듯 천천히 그에게 다가는 이오리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분홍빛이 가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애증일까,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일까?
"이... 이치죠우..."
이제 이오리는 허리를 숙여 켄의 코 앞에 있었다. 마른 침을 삼키며 그의 이름을 내뱉어 보았지만, 입 안에서 맴돌기만 하는 그 이름은 차마 바깥 세계의 빛을 보지 못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이오리의 눈동자는 계속해서 켄의 얼굴을 훑고 있었다- 그의 어여쁜...
"켄 상."
나즈막한 한마디와 함께, 이오리의 입술이 켄의 입술에 살포시 닿았다. 온 몸으로 퍼져나가는 달콤한 맛에 그는 감히 입술을 뗄 수 없었다. 첫키스 상대가 자신이 싫어하던 사람이라니- 그것도 남자와의 입맞춤이라니!
하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잠에서 깬 듯 천천히 눈을 뜬 켄이, 놀란 표정으로 황급히 고개를 뒤로 뺀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 이- 이오리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