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케히카 - 지금 여기서
타케히카 - 지금 여기서
2017년 8월 3일
*19금 주의*
"음..."
적막이 무겁게 내려앉은 호텔 방 안에서, 대충 걸치고 있는 수건 아래 젖은 래쉬가드를 입은 두 남녀가 어색한 듯 서로의 눈빛을 피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 앞에는, 침대에서 세네 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떡하니 놓여있는 핫터브 느낌의 욕조가 있었다. 침대 옆 욕조라니, 도대체 누가 설계한 거야?
끈질긴 노력 덕에 마침내 타이치에게서 OK를 받아낸 타케루와 히카리의 첫 여행은 역시 바닷가였다. 따가운 햇빛이 내리쬐는 7월, 해수욕장은 비록 더위를 피하려 놀러온 사람들로 붐볐지만, 그마저도 그들에겐 신선하고 좋은 경험일 뿐이었다.
그래도 성수기는 성수기였을까. 맘에 드는 호텔을 찾으면 방이 없고, 방이 있으면 맘에 들질 않고... 결국 중간에 누군가 취소한 듯한 호텔 방을 불과 여행 하루 전에 부랴부랴 잡았지만,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아 예, 죄송하지만 바꿔드릴 수 있는 방이 없어서... 성수기인지라."
참으로 좋은 호텔인데, 도대체 왜 욕조가 침대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걸까? 목욕을 하고 나면 침대 및 방 자체가 습해질테고, 왜 애초에 화장실에 있지 않고 방 안에 있는거고, 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타케루는 이만한 방을 잡은게 어디냐는 히카리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어컨도 있고, 넓기도 하고, 냉장고도 있고, 게다가 무엇보다 바닷가 바로 앞이고.
그래, 뭐, 신나게 놀다가 히카리 쨩이 먼저 씻게끔 하면 되겠지, 내가 화장실이나 어디 다른 데 가 있던지 하는 동안. 괜찮을거야.
그래서 괜찮을거라고, 괜찮겠거니 했는데-
바다에서 서로 신나게 놀다가 호텔에 들어온 시간은 그새 저녁. 바닷바람 때문인지, 젖은 수영복 때문인지, 수건을 둘러도 한명이 씻는 동안 화장실에 들어가 있던 복도에 나가 있던 하기에는 너무나도 추워져버린 날씨였다. 그렇다고 해서 씻지 않고 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니, 아니지. 무슨 소리람. 차라리 내가 아픈게 낫지. 침묵을 먼저 깬 건 그런 생각에 다다라 굳게 결심한 타케루였지만, 히카리의 이름을 부르려던 그의 말은 고개를 푹 숙이고 카펫만을 바라보던 히카리가 불쑥 말해버린 한 마디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씻을래?"
아- 그래, 히카리 쨩이 먼저 씻고 싶어한다면 내가 기다려야... 히카리에게 알겠다는 듯 고개를 조용히 끄덕이고 돌아선 타케루는, 침대를 향해 두어 발자국을 내딛은 후에야 히카리의 말이 의문문이었음을, 그리고 그녀가 얘기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잠, 잠깐만, 히카리 쨩-"
수건이 땅에 떨어지는 것도 잊은 채 몸을 돌린 타케루는, 이미 수건을 벗고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하는 히카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남은 말을 삼켰다. 물론, 히카리와 사귄지는 벌써 1년을 웃돌고 있었고, 그들이 사랑을 나눈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렇지만 모든 것은 어두운 방 안에서, 이불 속에서였지 않는가. 비록 저녁이라고는 하지만 불빛이 눈부시게 빛나는 방 한가운데에 떡하니 놓여져 있는 욕조 안에서 히카리와 모두 벗고 목욕을 같이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띵해지는 걸 간신히 참으며 타케루는 다시 입을 열었지만, 조용히 말을 꺼낸 히카리에게 또다시 막히고 말았다. 이 짧은 시간 안에, 벌써 세 번째였다.
"이렇게 하면 거품도 막 올라오네! 거품 목욕을 늘 해보고 싶었는데-"
나즈막하지만 뭔가 신나는 듯한 목소리. 그렇지만 타케루는 히카리가 욕조의 가장자리를 비정상적으로 쎄게 쥐고 있음을,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를 사소한 변화였지만, 타케루는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말을 먼저 꺼낸 건 히카리였지만, 그녀도 떨리는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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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물이 다 차오르고, 넘쳐 흐를것만 같은 거품이 욕조를 뒤덮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5분이었지만, 두 사람이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기다리던 시간은 마치 반나절이라도 되는 듯 했다.
"타케루 군."
아. 나즈막한 히카리의 목소리에 타케루는 이해했다는 듯한 목소리로 몸을 돌렸다. 히카리가 지퍼에 손을 대고 있는걸 봤으니까- 먼저 들어가고 싶은 거겠지. 그러면 나도 일단-
"이것... 좀 도와줄래?"
우뚝. 상의의 지퍼를 내리고 있던 타케루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히카리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돌아본 히카리는 어색한 표정으로 내려가지 않는 지퍼를 가리켰고, 타케루는 그녀를 향해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조심스럽게 힘을 두어번 주자 수월하게 내려가기 시작하는 지퍼. 떨리는 손으로 내리는 지퍼 너머로 히카리의 브라가 보였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보이는 그녀의 얼굴. 자신의 눈을 마주치는 히카리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던 타케루는 그녀가 천천히 손을 뻗어 자신의 지퍼를 내려주는 것을 거의 눈치채지 못할 뻔 했다.
거의.
지퍼를 내려주기 위한 그녀의 몸짓은 히카리의 얼굴을 타케루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게 했고, 서로의 숨소리를, 숨결을 느낄 수 있을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타케루는 히카리의, 그리고 히카리는 타케루의 래쉬가드를 조심스럽게 벗겨주었다. 조용한 적막, 하지만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적막. 조금씩 가빠지는 듯한 숨소리 속에서, 둘은 서로의 눈동자만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적막을 깬건 다름 아닌 수도꼭지에서 떨어진 물방울 소리. 조그마한 소리에도 허겁지겁 놀란 둘은 옷을 마저 벗겠다고 횡설수설해댔고, 재채기를 한 타케루는 그제서야 지금이 추운 저녁임을 깨달았다.
어서 들어가야지- 라고 생각하며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내린 타케루는, 히카리가 멍하니 자신의 뒷모습을 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눈이 마주치고 서로 부끄러운 듯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 둘. 마치 막 사귀기 시작했던 때로 돌아간 것만 같달까.
"들, 들어갈께, 히카리 쨩."
부끄러운듯 다시 등을 돌린 히카리에게서 나즈막한 응. 을 들은 타케루는 기다렸다는 듯 바지와 속옷을 옆으로 치우고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거품 아래로 숨겨져 있던 뜨거운 물에 얼굴이 찡그려졌지만, 발부터 천천히- 허벅지를 지나, 배, 가슴, 목까지- 그 뜨거움은 곧 따뜻함이 되어 추위에 떨고 있던 그의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미끄러지듯 기울어지는 몸. 코 바로 밑을 간지럽히는 거품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깊은 숨을 내쉰 타케루는, 천천히 눈을 뜨다 이내 팬티를 천천히 벗는 히카리의 모습을 보고 막힌 수로가 뚫리듯 날카롭게 숨을 들이마쉬었다.
코와 입을 따라 들어온 뜨거운 물 떄문에 재채기를 하며 기울어진 몸을 벌떡 일으킨 타케루는 히카리를 깜짝 놀라게 하기 충분했고, 후다닥 달려와 기침을 하는 자신에게 손을 뻗으며 괜찮냐고 묻는 히카리를 향해 타케루는 괜찮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자신에게 달려오느라 부끄러움도 순간 잊은 듯한 히카리는, 말문이 막힌듯 자신을 쳐다보는 타케루의 눈빛에서야 자신이 알몸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 했다. 허겁지겁 타케루에게서 멀어진 히카리는 조심스레 그의 반대쪽으로 몸을 담구기 시작했고, 그녀를 위해 다리를 접은 타케루는 히카리를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가만히 서로를 들여다보는 눈동자.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고 있자니, 부끄러움도, 어색함도 같이 녹아내린걸까. 누가 먼저랄 새도 없이 천천히 서로를 향해 다가간 그들은 어느샌가 물 속에서 서로를 깊게 껴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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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진 듯 편안한 물 속에서, 히카리는 타케루에게 조용히 머리를 기댔다. 다리를 쭉 펴고 있는 타케루의 사이에 앉아, 등을 그의 배와 가슴쪽에 대고 있던 그녀는 반쯤 기울어진 몸을 타케루만으로 의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 턱을 조심스레 기대고 있는 타케루의 팔은 그녀의 허리에 휘감겨져 있었고, 목욕을 즐기는 동안 무언가라도 보자는 생각에 틀어놓은 티비는 무언가 시끄러운 예능으로 어두워진 방을 밝히고 있었지만 둘 중 어느 누구도 관심을 주진 않는 듯 했다.
가끔 서로를 바라보며 짧은 키스를 나누는 것 말고는 조용히 서로에게 기대어 노곤해진 몸을 조용히 풀고 있던 둘. 이렇게 피로를 풀고 씻으면 다 되겠지, 라고 타케루는 생각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의 계획을 완전히 엇나가게 한 장본인은 바로 그였다.
자신을 조심스레 올려다보는 히카리를 보며 미소지은 타케루가 고개를 숙여 서로의 입술을 맞추려는 순간, 아무생각 없이 올라온 그의 손이 향한 곳은 다름아닌- 히카리의 가슴. 움찔- 하는 히카리의 몸짓에 화들짝 놀라 손도, 입술도 떼어버렸지만, 히카리는 그의 뒷통수를 붙잡고 타케루의 입술을 다시 끌어당겼다.
마침내 둘의 입술이, 그리고 얽히고 섥히던 혀가 떨어졌을때,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려 타케루를 마주보았다. 타케루를 욕조 벽으로 더욱 더 밀어붙이며 다시 그의 입술을 탐한 그녀의 손은 가슴에서부터 미끄러져 자신이 기대고 있던 덕에 오므라지지 않은 그의 다리 사이로 향했고, 이미 단단해진 그의 물건을 조심스럽게 쥐었다.
입술을 떼고, 다시 히카리와 타케루는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이미 티비에서 들리는 소리는 저 멀리 있는 듯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고,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둘은 이미 서로가 서로를 원함을 알고 있었다.
히카리의 손이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고, 타케루의 손 또한 그녀의 가슴을 지나 엉덩이로, 그리고 그녀의 다리 사이로 훑어내려가는 동안, 그들은 무언의 욕망을 눈빛으로 교환했다.
지금 여기서?
지금 여기서.
묶여있던 사슬이 풀리듯, 서로를 탐하는 듯한 손길이 온몸을 훑었고, 거칠어진 숨은 더 거칠게 타케루 위에서 움직이는 히카리와 그런 그녀를 어루만지는 타케루의 신음소리가 되어 울려퍼졌다. 첨벙, 첨벙하며 흘러넘치는 목욕물처럼, 그들의 사랑도 계속 흘러넘치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예상보다 오래, 그리고 격렬해진 목욕은 피로를 풀어주기는 커녕 두 연인을 더 피곤하게만 만들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