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레스 - 카소드 테이머

2015년 11월 27일


"이야아, 이게 누구야, 워레스 아니야-"


"다이스케 군-!"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로 눈을 굴리는 타케루를 컴퓨터에서 밀쳐낸 다이스케는, 타케루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화상통화를 통해 모니터 너머로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백인 아이에게 큰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 기억하고 있겠죠, 워레스 군,"


쉴새없이 지난 일들을 떠벌리는 다이스케를 간신히 밀어낸 타케루가, 워레스를 보며 나머지 아이들을 향해 손짓했다. 이제 중학생 교복을 입고 있는 미야코와 히카리가 오래된 친구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사복을 입고 있는 이오리 또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금 더 어두운 교복을 입고 있는 또다른 아이 하나는, 나머지 아이들 옆에 어색하게 서있기만 할 뿐이었다.


"아, 맞아, 그러고 보니 그때는 켄이 없었지,"


다이스케의 손에 반쯤 이끌려 모니터에 얼굴을 드러낸 단발 머리의 아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의 자수정빛 머리를 쓸어넘겼다. "아-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반가워요."


"나도 타케루한테서 얘기는 많이 들었어- 만나서 반가워, 켄!"


"그러고 보니까 말야, 워레스," 다이스케가 마침내 켄의 손을 놓고 다시 워레스와의 대화에 집중하자, 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모니터에서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어차피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만큼, 그는 나머지 아이들이 기쁜 맘으로 대화를 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셈이었다... 다이스케의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래서, 구미몬이랑 초코몬은 잘 지내?"


켄은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몸이 돌처럼 굳어짐을 느꼈다. 특별히 그 디지몬들을 아는 건 아니었지만, 워레스의 파트너가 하나가 아닌 이라는 것에.


"죄송합니다, 워레스 군, 한가지만 물어볼게요."


다이스케를 밀어낸 켄이 무릎을 꿇고 모니터 앞으로 다가갔고, 뭔가 이상한 기류를 알아차린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 걱정스런 눈빛으로 켄을 바라보았다.


"아, 응, 얼마든지."


"혹시... 아키야마 료라는 사람을 아세요?"


켄의 물음에, 아이들은 하나같이 눈썹을 치켜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들의 모험이 끝난 후, 디지몬 카이저가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이스케가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켄은 상세한 이야기를 하기를 꺼려했다- 그를 도와줬다는 단 한 사람의 이름, '아키야마 료'를 제외하고.


그 이후로 절대 켄의 입에서 그 이름이나 그 때의 일이 언급되는 적은 없었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아이들은 무언의 눈길을 주고받았지만, 그들을 더 놀라게 한 것은 다름아닌 워레스의 대답이었다. 


"아, 너도 료를 아는거야? 이야, 반가운걸. 그 녀석은 잘 지내는가 모르겠네."


"그에게서 무언가 특별한 걸 받기라도 했나요?"


"그게 무슨 소리야?"


"워레스 군... 디지몬 파트너가 둘이잖아요. 안그래요?"


"응, 그렇지. 초코몬과 구미몬. 이 둘은 쌍둥이니까-"


"하지만, 워레스 군은 카소드 테이머 (음극 조련사)가 아니잖아요?"


"뭐- 무슨 테이머?"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의 등장에,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젠장, 코시로 형이 있었어야 했는데. 타케루가 저 단어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믿는 코시로의 존재를 그리워하고 있는 동안, 다이스케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켄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켄은 손을 들어 다이스케를 저지했다- 아직도 모니터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채로.


"료 상을 어떻게 만났는지 혹시 기억해요?"

"어? ... 글쎄... 이상하네. 그 부분이 기억나질 않아."


금발의 아이는 고개를 옆으로 꺾고는, 꼴똘히 생각하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켄은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 속사포처럼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어떻게 자신의 디지몬 파트너와 만났는지는요?"


"에.. 그게, 이렇게 말하면 웃기지만 말야, 모니터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는걸."


워레스가 얼굴에 호선을 그리며 말했지만, 켄은 웃기는 커녕 눈 한번 깜빡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켄은 워레스에게 질문을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럼 D-1 그랑프리는- 사성수는요?"


"그랑프리? 그랑- 아, 그래, 맞아. 그때 료랑 겨뤘었지. 다른 테이머들도 거기 있었고 말야. 흠, 생각해보니까, 료에 대해서 내가 기억하는게 그거밖에 없는걸... 아참, 그러고 보니 타케루, 네 형도 거기 있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야마토였나?"


형의 언급에 고개를 휙 돌린 타케루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형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형이 워레스를 이미 한번 만났었단 말인가? 하지만 왜 이 얘기를 하지 않았지? 왜 워레스를 처음 보는 척 한거지? 그 이후에 간 것이라면, 왜 난 알지 못했던 거지? 수많은 질문이 입 안에서 소용돌이쳤지만, 그런 타케루를 뒤로하고 계속 말을 이어간 것은 켄이었다.


"뭔가 말이 안돼도 크게 안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워레스 군?"


"그게 무슨 소리야?"


"어느 순간 디지바이스가 나타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파트너 디지몬이 둘. 하지만 어노드 카소드에 대해선 아는 것 하나 없고, 료 상을 만났지만 기억하는 건 그랑프리 뿐. 무언가 잘려나갔다는 생각이 들지 않냐구요, 워레스 군."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켄과 워레스를 번갈아 쳐다봤지만,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건 워레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봐 켄, 료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난 거까진 좋은데 말야, 도대체 무슨 소리를-"


"밀레니엄몬."


켄의 나즈막한 한마디에, 워레스는 말을 멈추었다. 그의 얼굴에 퍼져있던 연민의 미소는 한순간에 싹 사라져 버렸고,마른 침을 삼키는 워레스의 피부는 핏기가 가셔, 원래보다 더 하얗게 보일 지경이었다.


"우리의 기억엔 구멍이 있어요... 마치 누군가 가위로 잘라낸 것마냥."


워레스는 당황한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마치 깊이 묻어두었던, 기억해선 안되는 무언가를 억지로 끄집어 내기라도 한 듯.


식은땀을 닦은 켄은, 설명을 요구하는 아이들의 무언의 눈빛을 무시하고, 워레스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건넸다.


"료 상을 찾아야 해요.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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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octor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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