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이오 - 라면
2016년 1월 13일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이 모토미야 님을 부르라고!"
자신만만하게 엄지를 치켜들어 보이는 이 성게 머리의 형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보인 이오리였지만, 그는 힘을 쓰는 일이라면 몰라도 조언을 구하러 다이스케를 만나러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진지한 문제라면 타케루 상이 있었고, 기계와 관련된 것이라면 미야코 상과 코시로 상이 있었다. 학교에 대해선 켄 상이나 (이오리는 아직도 그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 대해 조금 껄끄러워했다) 죠 상이 있고, 패션이나 좋아하는 여자 문제라면 히카리 상, 소라 상 그리고 미미 상이 있었으니까. 그도저도 아니라면, 다이스케 상보다는 훨씬 더 경험을 많이 쌓은 타이치 상과 야마토 상이 있었다.
모토미야 다이스케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사람을 이끄는 리더십을 가진 남자였고, 이오리 또한 그를 따르고 존경하고 있었다.
그저, 무언가 의지할만한 타입은 아닐 뿐인거지.
***
특목중 시험을 보고 나온 이오리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디아블로몬의 농간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시험을 합격한 수재 키도 죠의 과외에도, 제대로 풀지 못한 문제가 너무 많았고- 땅이 꺼질 듯 내뱉는 한숨에는 실망감과 한심함만이 가득차 있었다.
모토미야 다이스케가 이오리 앞에 풀어헤쳐진 녹색 중학교 교복을 입고 모습을 드러낸 건 바로 그때였다.
"이오리! 시험 본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지! 어때, 잘 봤어?"
묵묵히 냉랭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이오리의- 어쩌면 무례할수도 있는-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다이스케는,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빼고는 조용히 이오리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다음에 잘 하면 되니까."
새빨간 석양빛에 빛나는 강가를 따라 집을 향해 걷는 그들 사이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혼자 생각할 시간을 원했던 이오리의 원망스런 눈빛을 아는지 모르는지, 휘파람을 불며 걷는 다이스케는 평온해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둘 사이의 고통스런 시간이 마침내 끝나고, 다이스케의 집 앞에서 인사를 하고 마침내 혼자 고독을 씹을 시간이 주어지려는 순간, 다이스케는 이오리의 팔을 잡아끌었다.
"가기 전에 잠깐 들어와봐."
"그냥 집에 가면 안될까요?"
이오리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지만, 다이스케는 억지로 그를 집 안에 들이고는 식탁 앞 의자에 앉혔다. 헤실헤실 웃으며 무언가를 준비하는 그의 뒷모습이 얼마나 열받던지.
뭐라고라도 한번 쏘아붙여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다이스케가 그에게 내민 것은 라면 한 그릇이었다.
"오늘 힘들었지?"
"..."
"대답 안해도 돼, 괜찮아. 따뜻한 라면 한 그릇 먹고 집에 가서 푹 쉬어. 내가 켄처럼 똑똑하거나 타케루처럼 똑부러지진 않아서 다음 시험을 도와주거나 할 순 없지만, 가끔 다 잊어버리고 편안하게 있고 싶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알았지?"
"고.. 고맙..."
고마움과 미안함, 서운함과 죄책감- 그 모든게 섞여 목이 메인 이오리는 차마 고맙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아까부터 계속 짜증만 내던 자기에게 라면을 내민 그 남자는, 다 이해한다는 듯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라면 국물에 비친 울먹이는 자신을 바라보며 우겨넣은 그 한입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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