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타케 - 바람 부는 날
2016년 1월 18일


쉬이이이잉-

바람 소리가 귀를 찢는 어느 추운 밤, 타카이시 타케루는 건물 안에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손에 쥐고 내려다보는 풍경은, 바람에 맥을 추지 못하고 허공에서 춤을 추는 나뭇잎과, 그들을 은은하게 비추는 조명같은 달빛으로 가득했다.

남자 아이들끼리 여행을 가자며 들떠있던 것도 잠시, 급작스럽게 몰아치는 장마 덕에 아이들은 큰 맘 먹고 빌린 캐빈 안에서 꼼짝없이 앉아있어야만 했다. 비는 그나마 그쳤지만 잠잠해질 생각은 추호도 없는 듯한 바람을 보며 나가기를 포기한 아이들은, 술을 마시거나 포커 게임을 하다 하나둘씩 나가떨어졌다.

모두가 잠든 듯한 이 새벽에,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타케루 옆에, 자신과 비슷한 키의 그림자 하나가 가까이 다가오며 그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타케루 군?"

고개를 돌리자, 목까지 올라오는 폴라티를 입고 손에 뜨거운 홍차가 담긴 듯한 컵을 쥐고 있는 단발머리의 남자가 서 있었다. 자신을 보며 싱긋 웃는 그의 꺾인 고개에 따라, 고운 자수정빛 머리가 살짝 흔들렸다.

"아, 켄 군. 안녕."

"늦었는데, 뭐해?"

"아, 그냥. 잠이 안와서."

"타케루 군도 안 자고 있을 줄은- 의외인걸. 난 바람 부는 날이 좋아서. 그냥 밖이나 좀 구경하려고 했지."

"특별히 바람을 좋아하는 이유라도 있어?"

타케루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밖을 바라본 켄은, 홍차를 한입 마시며 멋쩍은 듯이 웃었다.

"아니 뭐, 특별한 건 아니고. 그냥- 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면, 모든게 안정되는 느낌이야. 어렸을 때에는, 내 머릿속에서 울려퍼지는 나쁜 목소리들이 바람 소리에 씻겨져 나가듯 묻혀버리곤 했거든. 지금은 그런게 있진 않지만, 내 모든 문제를 바람이 보듬어주는 것 같달까."

타케루는 자신의 옆에 서있는 남자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자신이 한때 주먹다짐도 했었고, 또 무척이나 껄끄러워 하던 존재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켄 또한 착한 사람이고, 그리고 자신이 했던 일을 속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결단력 있는 남자임을 깨닫게 되었었다. 서로가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던 것도, 타케루가 마음을 열기 시작한 그 때부터였을까.

"좋다, 그치?"

"응."

각자 손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컵을 들고 있는 둘은, 말없이 바람 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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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octor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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