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켄 - 새벽

연성/단편 2016. 2. 21. 16:44

다이켄 - 새벽
2016년 2월 20일


허억-

오늘도 같은 꿈. 놀라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이치죠우지 켄은,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웜몬을 한번 쓰다듬고 침대에서 내려오자, 아침해가 천천히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가 디지몬 카이저로써 악행을 저지른지 벌써 수 년.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그 때에 대한 악몽을 꾼다. 울려퍼지는 디지몬들의 외침, 자신을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다른 아이들, 그리고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오사무 형. 아무리 잡으려 해도 닿지 못하는 그를 뒤쫓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 눈이 없는 친구들이 기괴한 입으로 자신을 비웃는 그런 꿈을, 그는 한 때 매일 꿨었다-

모토미야 다이스케가 자신의 집에 켄을 초대했던 그 날이 오기 전까진.

처음에는 초대에 망설였던 켄이었지만, 곧 다이스케에 이끌려 그의 집에 간 것은 그에게 있어서 좋은 선택이었다. 친절한 다이스케의 가족들, 맛있는 음식, 그리고 재밌게 나눈 많은 대화들. 그는 친구와의 행복을 만끽했다.

하지만, 어김없이 밤은 찾아왔다.


똑같은 악몽에 또다시 몸을 휘적이고 소리를 낸 탓일까. 눈을 떴을 때는 다이스케가 걱정되는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찮냐는 질문에 아무 일 없다며 내젓는 손짓. 부모님에게 많이 썼던 수법이었지만, 다이스케는 그를 믿지 않는 듯 했다. 결국 다이스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자, 그는 아무 말 없이 켄을 데리고 방의 창문을 열었다.


폐를 찌르는 듯이 몰려들어오는 새벽의 찬 공기. 몸이 오싹해질 정도였지만, 다이스케는 켄을 웃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그거 알아, 켄? 나는, 새벽이 좋아."


고개를 갸우뚱하는 켄에게 다가간 다이스케는, 켄 옆에 벌러덩 드러누워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잠이 안올때면, 나는 새벽 공기를 마시곤 하거든. 모두가 숨죽이고 잠든 이 시간에, 나만의 맑은 공기를 만끽하며." 


"너무 너 자신을 가두려고만 하지 마, 켄. 넌 잘못하지 않았어. 설사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 죗값을 이미 오래전에 치뤘는걸."


"그러니까, 너 자신을 드러내도 괜찮아. 봐, 새벽은 어둡고 무서울 것 같지만, 정작 나를 저 어두운 밤에서 격리시켜주는 창문을 열면, 맑고 깨끗한 공기가 들어오잖아?"


자신을, 그리고 그제서야 떠오르기 시작하는 해 덕에 천천히 밝아지는 하늘을 번갈아 바라보는 켄을 보며 웃음을 터트린 다이스케가 덧붙였다.


"뭐, 아무리 새벽이 어두워도 해는 뜨는 법이니까- 안 그래?"


그 이후로, 켄은 악몽을 꿀 때마다 조심스레 일어나 창문을 열곤 했다. 봄이건, 여름이건, 가을이건, 겨울이건,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다이스케의 말을 되뇌이고 나면, 신기하게도 잠이 솔솔 오곤 했다.


하지만 오늘, 오늘만큼은, 켄은 해가 뜨는 것을 지켜보기로 했다.


어두컴컴하던 하늘은 지평선 너머로 고개를 내민 햇님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다이스케가 처음으로 그에게 손을 내밀었던 용기와 같은 주황색이 해 주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고, 다이스케가 자신을 가장 먼저 인정해줬던 그 우정을 상징하는 듯한 푸른색이 새까맣던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래, 다이스케 군. 오늘도 내 자신에게 좀먹히지 않을게. 가두려고 하지 않을게. 나는 이제 어깨를 피고, 허리를 펴고 이 세상을 두 팔 벌려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걸.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라도 봄은 오니까.

아무리 어둡고 무서운 새벽이라도, 해는 뜨니까.


나에게 한파 속에서도 피어오른 꽃봉우리처럼, 

어두운 새벽을 천천히 밝혀오는 빛처럼 눈부신 모두가 있는 이상-


나는 절대 혼자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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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octor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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