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케히카 - 그와 나
2015년 2월 15일
타케루 군은 자기 형의 요리 실력을 이어받지 못한 게 확실했다.
"우와아앗!"
"타케루 군! 그걸 맨손으로 만지면 어떡해!"
"하지만 히카리 쨩-!"
아이처럼 내게 입을 삐죽 내밀고는 차가운 물로 손을 씻고 있는 그를 보며 난 키득거렸다.
***
오늘은 타이치 오빠의 생일이었다.
여느때랑 다름 없이 축구하느라 바쁠 오빠를 위해, 아이들은 깜짝 파티를 계획했다.
케익을 만드는 것은 내 담당이었지만, 어느때처럼 우리 집에 놀러온 타케루 군은 조수를 자처했다.
"그렇다면야.. 자! 여기 앞치마 입어, 타케루 군!"
"에엑? 앞치마라니?!"
"케익 만들건데 옷에 다 흘리면 어쩌려구!"
"하지만 그래도 남자한테 앞치마는 좀..."
"조수는 요리사 말을 들어야지~!"
"게다가.. 앞치마 입은 남자.. 귀엽기도 하고."
내 속삭임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타케루 군은 웃으며 고개를 젓더니 곧 앞치마를 입었다.
그리고 그렇게, 케익을 만들기 위한 우리의 길고 험난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
"그래도 얼추 모양은 잡혔는데?"
"정말.. 빵 하나 만드는데 몇시간을 허비한거야!"
"헤, 그래도 귀여운 앞치마 두른 조수님 덕에 재밌지 않았어, 히카리쨩?"
엑, 뭐야, 들었었구나.
난 내 얼굴이 귓볼까지 빨개지는 걸 느끼며, 빨리 화제를 돌리기로 결심했다.
"그, 그래, 그럼 이제, 생크림으로 장식을..."
"내가 한번 해봐도 돼?"
타케루 군이 생크림이 가득차 있는 짤주머니를 집으며 말했다.
"그거 어떻게 쓰는지는 알아, 타케루 군?"
"글쎄..."
타케루 군이 짤주머니를 요리조리 돌리더니, 구멍을 눈으로 보다가 잘못해서 생크림을 쭉 짜내버리고 말았다. 깜짝 놀란 타케루 군의 코에는, 생크림이 한가득 묻어있었다.
눈썹을 모으며 얼굴을 찡그린 타케루 군은 곧 자신의 코를 보려고 눈을 모았는데,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웃겨서 난 그만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뭐야, 왜 웃는거야 히카리쨩?"
"아니, 그냥, 타케루 군 사시로 코 쳐다보려는게 너무 바보같아서-"
타케루 군이 내 말을 듣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의 얼굴엔 장난끼 가득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곧, 그는 코에 생크림을 묻힌 채 그대로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뭐라고 할 새도 없이, 그는 내 어깨를 잡고 내 얼굴을 자신의 얼굴 바로 앞까지 데려왔다. 난 타케루 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얼굴이 또다시 새빨개지는 것을 느꼈지만, 뿌리칠 수도, 뿌리치고 싶지도 않았다.
내 앞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타케루 군의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갓 구워진 빵의 달콤한 향기가 온 집을 뒤덮고 있었지만, 마치 그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우릴 감싸돌고 있는 것 같았다.
간신히 고개를 든 나를 버선발로 맞이한 것은 맑은 바다만큼 새파란 그의 눈이었다.
그 순간이 영원 같았다. 심장은 이렇게나 빨리 뛰는데, 시간은 왜 멈춰버린 걸까.
그리고 시간은, 멈춰버린 것 만큼 갑작스럽게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날 바라보던 타케루 군이 씨익 웃더니, 생크림이 묻은 자기 코를 내 코에 비볐다.
"에에엣?"
망상에서 빠져나온 나는 한발짝 뒤로 물러섰고, 곧 내 코에도 생크림이 묻었음을 깨달았다.
아직도 얼굴이 새빨개진 상태로, 나 또한 무의식적으로 내 코를 내려다보려고 애썼다.
웃음을 참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타케루 군이 푸핫- 하고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내가 타케루 군을 놀리던 그 행동을 내가 그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케루 군-!"
홍당무처럼 벌개진 내 얼굴을 생크림을 닦을 타월 뒤에 허겁지겁 숨겼던 나는, 곧 눈에 눈물을 머금고 웃고 있던 타케루 군을 바라보았다.
무슨 연유에선지 난 그런 타케루 군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알 것 같았다. 저 장난기 가득한 희망찬 웃음은, 내 기분이 아무리 얼음장 같은 날이라도 따스한 여름 햇빛처럼 날 녹이곤 했으니까.
타케루 군이 곧 웃음을 멈추더니, 나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그를 바라만 보고 있을 수 밖에 없는 나. 어쩌면 나, 이 금발의 천사에게 홀린 게 아닐-
"너네 둘 거기서 뭐하냐?"
현관문을 열고 부엌에 서있는 우리를 보고 묻는 타이치 오빠의 목소리에, 나도 타케루 군도 그 자리에서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내가 어버버거리며 할 말을 찾는 동안, 타케루 군이 빠르게 몸을 돌려 타이치 오빠에게로 다가갔다.
"타이치 형! 안그래도 형이랑 얘기하려고 왔죠. 어제 축구 경기를 봤는데..."
"네가 언제부터 축구에 관심을 가졌다고 그래?"
"에이, 다이스케랑 친구 먹은지가 몇년인데, 보기 싫어도 보게 되는걸요!"
타이치 오빠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게 빠르게 말을 내뱉던 타케루 군이, 나를 바라보며 윙크를 했다. 곧이어, 거의 끌려가는 오빠와 아직도 말을 멈추치 않은 타케루 군은, 오빠의 방 안으로 사라졌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정말, 못말린다니까."
나, 어쩌면 홀려버린게 맞을지도.
비록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타케루 군, 나, 용기를 내 볼게.
타케루 군이 내 앞길을 밝혀주는 희망의 등불인 것 처럼,
타케루 군을 비춰주는 하나의 빛이 될 수 있도록.
그와 나-
너와 나.
함께 나아갈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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