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야마 - 달

연성/단편 2017. 5. 12. 12:17

겹사돈 - 놀이공원
2017년 2월 20일


아- 더워, 임마. 늦은 하굣길. 이미 건물들 뒤로 해가 얼굴을 숨기고 달이 어둠과 함께 기웃기웃 하늘을 수놓기 시작하는 저녁,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타이치의 팔을 쳐낸 야마토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부끄러워하긴-"


어이가 없다는 듯 자신을 노려보는 야마토의 눈길을 외면한 타이치는, 푸핫, 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뒷머리를 긁었다. 아아, 그래, 벌써 여름이었다. 특히나 자신은 축구를, 야마토는 밴드 연습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으니- 그 후끈함은 끈적이는 더위와 맞물려 서로에게서 극심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을게 분명했다.


장난으로라도 이 녀석에게 손을 댈 수 없는 계절이 다시 돌아왔네. 타이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지만, 야마토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 달이다."


우뚝 걸음을 멈춘 야마토는, 환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중얼거렸다. 저렇게 웃는 녀석을 본 것도 또 오랫만인 것 같았다. 달이 그렇게 좋냐? 넌지시 던진 질문에 야마토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고개를 내려 타이치를 바라보았다.


"달이 뜨면 밤이 오고, 밤이 오면 찬 공기가 몰려들잖아. 지금 같은 더위에는 딱 아니야?"


아이고, 꼭 멋진 척이란 멋진 척은 다 해요, 열대야도 모르시나- 킬킬 웃으며 타이치가 지적하자, 눈을 굴린 야마토는 네가 뭘 알겠냐, 라고 맞받아치며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자신을 따라오는 타이치의 발걸음 소리를 듣던 야마토는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돌리진 않은 채로 손가락을 들어 한 마디를 덧붙였다.


"늑대들은 달을 좋아하잖아."


늑대라. 늑대는 달을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은 자신을 늑대라고 표현하길 좋아했다. 오죽하면 중학교 때의 밴드 이름 또한 틴에이지 울브스였을까. 자신의 목울대를 조용히 만지작거리던 타이치는, 마치 한 때 자신의 목에 걸려있던 자신의 문장을 느낄 수 있을것만 같았다.


나는 태양인데. 


그 때 갑자기 울려퍼진 전화벨 소리. 전화를 받은 야마토는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띄고는, 타이치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묵언의 인사를 보내곤 골목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뒤돌아보지 않는 그 녀석의 빛나는 금발을 바라보며, 타이치는 야마토를 비추는 달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바뀐다면.

내가 달이 된다면, 그 땐 나를 바라보면서도 그렇게 웃어줄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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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octor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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