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좀 하자."
입이 찢어질 듯 하품을 하며 강의실을 나선 이시다 야마토는 무슨 일이냐고 물을 새도 없이 남자친구에 손에 이끌려 학교를 떠났다. 늘 웃는 모습을 보이던 천하의 야가미 타이치가 저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데리고 가고 있으니, 무슨 일이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설마-
"우리, 애칭이 필요해."
는 개뿔, 이게 뭔 개소리야?
***
"그러니까, 꽁냥거리고 싶으신데 내가 성격이 더러워서 못했었으니 이 기회에 좀 해보자?"
"어우, 돌직구 너무 묵직한 거 아니냐?"
그럼 그렇지.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타이치는 동생들의 연애가 부러운 모양이었다. 케루 군이니, 나의 천사라느니, 듣기만 해도 괜히 소름이 끼치는 호칭들로 서로를 부르는 걸 보고 있자니 자기도 그런 연애를 내심 해보고 싶었던 건지 뭔지. 한 때는 자기네들도 손만 잡아도 얼굴이 벌개지는 시절이 있었더랜다-- 그런데 이제 연애한지 5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제 와서 무슨 애칭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사귄 시간이 긴 만큼 야마토는 타이치가 어떤 녀석인지 잘 알았다. 매사에 진지한 구석이라고는 없어 보이지만 속은 깊고, 진중할 때는 진중한 놈. 한 번 꽂힌 것은 어떻게든 해내고자 하는 놈. 그러니까 문제였다. 그나마 애칭에 꽂힌 게 다행이지-- 동생들이 하는 다른 짓에라도 꽂혔으면 어쩔 뻔 했나.
"하... 그래, 그래서, 뭐, 무슨 애칭을 원하는데? 자기야 라고 불러주랴?"
"에이, 그런 건 너무 식상하잖아. 뭔가 우리끼리만의 그런 게 없을까? 그래, 히카리가 타케루를 줄여서 케루라고 부르고 막 그랬잖아, 그럼 너는 야마 어때?"
"너 때문에 야마 돈다 진짜..."
"그럼 네가 뭐라도 좀 생각해봐!"
"아니 네가 다짜고짜 시험 공부때문에 밤을 샌 사람을 끌고 나와서는 헛소리를 했는데, 왜 내가 그걸 생각해내야 하는건데?"
"야마토니까, 음, 야.. 마토... 매튜는 어때? 바다 건너에서도 잘 먹히던데."
"네타 발언 하지 마라..."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시간 없다고 나중에 얘기하자고 그 자리를 뜬지 나흘. 하지만
타이치는 굴하지 않았다. 일본이 한 때 해가 뜬다는 뜻의 야마토라는 이름의 왕국이기도 했으니, 나의 세계는 어떻겠냐는 소리를 했다가 두들겨 맞았는데도, 저 놈의 고집은 굽히질 않았다.
게다가 이 빌어먹을 고집은 더 이상 자신들만의 이야기로 끝나질 않았다. 이틀 전에는 새벽에 미미가 갑자기 "생각났다! 야'가미'(神) 니까 나의 신님이라고 부르는거지" 라고 오질 않나, 어제는 타케루와의 저녁 약속에서 타케루가 도통 말을 하지 않고 있길래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형의 애칭을 히카리랑 함께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고 말하지 않던가.
"아예 한 글자로 줄여서, 타이치 형은 타고, 형은 얌이면 어때? 커플링 표기도 그렇게 하잖아."
"나만 빼고 무슨 단체로 네타 발언 약속이라도 잡았니 너넨?"
대체 타이치가 누구한테까지 다 얘기를 하고 다닌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니 원. 둘이서 이러고 있어도 쪽팔려 죽겠는데, 모두의 힘을 합쳐 이딴 건 다크 마스터즈랑 싸울 때로 족하다고, 진짜.
그래서 오늘. 야마토는 기필코 오늘 어떻게든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점심데이트였지만, 분명 타이치는 이 주제를 어떻게든 끌고 올 테니까.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 볼 심산이었다.
"오래 기다렸어, 다이와 군?"
하?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은 타이치는, 한자로 적은 야마토 (大和)를 음독으로 읽으면 다이와 라고 발음을 하지 않느냐며, 새벽 내내 네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애칭을 생각해 왔다고 했다. 그래, 장하다 장해. 근데 있지...
"내 이름은 가타카나라고 (ヤマト)----!!!!"
"아악 그랬지!!!!!!"
방금 얻어맞은 머리를 쓰다듬은 타이치는 결국 데이트 내내 축 처진 기분을 유지하고야 말았고, 야마토는 괜히 죄책감이 드는 자신을 막을 수 없었다. 그래도 남자친구랑 투닥이는 거 말고도 좀 연인같이 행동해 보겠다고 하는 건데, 너무 화만 낸 게 아닐까? 그래, 이런 게 다 싫은 건 아니니까. 내가 뭐라도 애칭을 하나 생각해보면, 타이치도 기분이 좀 풀리지 않을까.
"그럼 있잖아, 타이치. 그... 우리 문장이 있으니까. 나의 우정, 나의 용기 이런 건 어떠냐?"
"와, 존나 구리다."
아 씨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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