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케히카 - Falling For You
2016년 2월 18일


글을 시작하기 전에:

이 연성은 천사 타케루 x 인간 히카리 AU 삼부작의 첫번째 이야기입니다.

두번째 이야기 : Flying For Us

세번째 이야기 : Freeing For Me



***



"육품 능천사 (六品 能天使), 타카이시 타케루. 제 2 선봉대대의 부지휘관으로써 맡은 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얗도록 눈부신 빛에 가려, 세 쌍의 날개 말고는 그 형체마저도 가늠할 수 없는 존재는 손으로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그 앞에 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금발의 남자는, 다시 화려한 무늬와 두 개의 별이 새겨져 있는 검은 제복모를 깊게 눌러썼다.


금빛으로 형형색색의 문양이 수놓아져 있는 거대한 문이 닫히고, 어깨와 팔등지에 숫자 6이 적혀있는 큰 별 문양이 달린 검은 제복을 입은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그 곳을 빠져나왔다. 풀려있던 단추를 조용히 잠구고, 소매를 만지작거리는 그의 손목에는, 금색 손목시계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시계에는 아무 숫자도 적혀있지 않았고, 그저 흔들리는 붉은 초침만이 어딘가를 불길하게 가리키고 있을 뿐이었다. 


"축하하네, 타카이시."


자신을 보며 싱긋 웃는 흑발의 남자에게, 그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의 제복은 타케루의 것과 비슷해 보였으나, 제복모에는 대대의 지휘관임을 암시하는 세 개의 작은 별이 추가로 매달려 있었다.


"감사합니다, 지휘관님."


"그럼, 전장에서 보지."


그 순간, 한 쌍의 하얀 날개가 지휘관의 등 뒤에서 솟아올랐고, 그는 빠른 속도로 날아올라, 구름 밑으로 사라졌다. 


타카이시 타케루는 조용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이 궁전 아래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셀 수도 없는 시간이 흘렀어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지겨울 뿐이었지만, 천사들의 군대인 능천사로써 그가 해야할 일은 자명했다. 


곧이어 그의 등에서 펼쳐진 새하얀 날개.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금발을 가린 제복모를 더 푹 눌러쓰고, 붉은 넥타이를 고쳐맨 그는, 허리춤에 차고 있는 두 자루의 산탄총을 조심히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깊은 한숨과 함께, 그 또한 날아올라 구름 너머로- 그 영원의 전쟁터로- 향했다.



***



그곳은 지옥도, 천국도 아니었다. 


천공이 붉게 물들고 대지가 검게 타오르는 이 전쟁터에서, 그들은 영겁의 시간을 싸워왔다- 누가 먼저 싸움을 시작했는지, 왜 싸워야 하는지조차도 잊어버릴만큼. 하지만 하늘에선 날개를 단 천사들이 끊임없이 내려와 정의의 심판을 내렸고, 땅에선 뒤틀린 모습을 한 악마들이 계속해서 기어올라와 지상과 천상을 모두 불태우려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그가 있었다.


막 다림질한 듯 빳빳하던 제복도, 눈부실만큼 새하얗던 날개도 지금은 붉은색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의 지휘관이 뒤에서 지시를 내리는 동안, 타케루는 돌격대장처럼 악마들에게 가장 먼저 달려들곤 했다. 허리춤에 찬, 빛나는 자수가 놓여진 소드 오프 샷건 두 자루를 들고 전장을 누비는 그에게는 많은 별명이 붙었었다- 하지만 역시 그 중 단연 으뜸을 꼽자면, 붉은 눈의 타카이시.


가차없이 적들의 숨통을 끊어버리고, 빛과 같은 속도로 전장을 종횡무진하는 그에게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은 바로 다름아닌 그의 무자비함 때문이었으니. 자신보다 몇 배는 더 거대한 악마의 공격을 손쉽게 피하고, 그 무기를 잽싸게 타고 올라가 에어로빅을 하듯 매끈한 동작으로 적의 머리를 날려버리는 그의 눈에는, 연민도, 죄책감도, 희열도, 승리감도-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원한 바다를 연상시키는 푸르른 두 눈동자를 가진 타케루였지만, 그의 죽은듯한 무표정한 눈길에 모든 악마들이 지레 겁을 먹었기에 그들은 그를 활활 타오르는 붉은 눈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으리랴.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시체의 산 위에 살포시 안착한 타케루는, 조용히 뺨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그런 그에게, 고통스런 목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으어어..."


시선을 내려보니, 발 밑에는 고통스런 표정을 하고 있는 형체가 살려달라는 듯 손을 뻗고 있었다. 악마도 아니고, 그렇다고 천사도 아닌 존재.


인간.


대부분의 인간은 멸종한지 오래였다. 남아있는 존재들은 대부분 서로 치고박고 싸우다가 알아서 자멸하거나, 아니면 악마의 꾐에 넘어가 그들의 종으로 부려먹힐 뿐. 천상과 지옥의 싸움에서, 그들은 그저 소모품에 불과했다.


자신을 향해 알 수 없는 외침을 하는 인간을 파랗지만 붉게 타오르는 그 눈으로 내려다본 타케루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녀를 발견했다.


이 전쟁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은 한 명의 인간. 악마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은 듯, 순수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는, 붉은 대지 구석에 허름하게 지어진 집에 혼자 살고 있는 듯 했다. 다가오는 악마들을 위협하거나 가끔은 쏴죽이기까지 하며, 그렇게 어떻게든 살고 있는... 인간.


천사들의 규율에 따라, 악마의 꾀임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인간은 발견하는 즉시 보고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옳은 일이었지만, 그는 그녀를 지켜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써... 그 다음에는 연민의 감정으로써.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수호천사로써.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그녀를 더 많이 지켜보게 되었고, 계속해서 알게 모르게 그녀를 도와주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자신은 악마도 천사도 믿지 않는다며 그를 쫓아내려 했지만, 환한 미소를 지은 그는 그저 그녀에게 계속해서 되도않는 말을 건네며 (악마랑은 다르게, 난 아무리 쏴도 맞출 수가 없다구, 인간?) 그녀 주위에서 시간을 때우곤 했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그녀가 그에게 마음을 연 것은 어느날, 악마들을 처치하며 인간을 만나러 오는 타케루가, 집 밖에 서있는 그녀를 총을 들고 있는 악마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였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눈을 감은 그녀,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는 악마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를 향해 날아든 타케루는, 자신의 날개로 그녀를 감쌌다.


실로 오랫만에 느껴보는 고통. 마지막으로 자신의 날개가 다른 존재의 피가 아닌 자신의 피로 얼룩진게 얼마만일까? 하지만, 지금은 고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한 그녀가 무사함을 확인한 그는, 짧게 그녀의 뺨을 쓰다듬고는,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까지 그녀를 바라보던 푸른 눈은, 다시 붉게 타오르고 있었고- 붉은 눈의 타카이시의 등장에 악마들은 줄행랑을 쳤지만, 그의 분노 앞에 그들은 곧 목숨을 내놓았다.


"괜찮아, 인간?"


"당신이야말로 괜찮아요? 그... 그 날개. 나 때문에-"


"걱정하지 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제서야 몰려오는 고통에 그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그것을 알아차린 듯,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아끌어 집 안으로 데려왔고, 자신이 직접 만든듯한 약초와 붕대를 꺼내들어 그를 치료해주었다.


"이렇게까지 안해줘도 되는데, 인간."


"히카리."


"뭐?"


"히카리. 내 이름이에요."


이해하지 못한 듯 자신을 쳐다보는 천사의 눈을 마주본 그녀는, 잊지 말라는 듯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을 읊었다.


피식 웃은 타케루는, 다시 자신의 상처를 돌보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반가워. 나는 타카이시 타케루. 제 2 대대 부지휘관이다."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어요. 붉은 눈의 타카이시."


"그냥 타케루라고 불러줬으면 하는데."


다시 타케루와 눈을 마주친 히카리는, 그의 눈동자를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보이지 않는 그 붉은 눈. 어쩌면 그가 이런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히카리 자신 앞에서 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의 생각은 곧 그의 질문에 잊혀져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히카리 쨩. 넌 여기서 혼자 사는거야?"


"네." 


"다른 사람은 없고? 친구라던지, 부모라던지."


"제 부모님은 이 싸움 속에서도 저를 낳고 악착같이 키워주셨지만, 제가 어른이 되기도 전에, 천사들을 만나 끌려가셨어요- 그 와중에도, 용케 저를 숨기시면서요. 그 이후로는 혼자 여기서 살고 있죠."


"거, 미안하구만."


"당신 탓은 아니니까요. 날 도와주기도 했고."


"음."


그 이후로 둘은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치료에 대해 감사의 표시를 전한 타케루는 다시 전쟁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었고, 히카리는 흰 날개를 펄럭이며 사라지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또 오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함께.



***



그들은 그렇게 점점 더 가까워졌고, 타케루가 히카리와 보내는 시간 또한 자연스레 늘어만 갔다. 가끔은 그녀의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타케루는 점점 더 삶의 의지를 되찾았다. 더 이상 붉은 눈의 타카이시는 없었다- 악마와의 싸움에서마저, 그의 눈에는 생기가 넘쳤다.


"자네, 요즘 눈에 띄게 활발해진 것 같은데."


"아, 그렇습니까, 지휘관 님."


"천하의 붉은 눈이 그런 미소를 띄고 있는 게 얼마나 큰 가십거리인지 자네는 모를게야."


"저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얘기가 오고가는 줄은 몰랐는데요."


상관의 말을 웃어넘긴 타케루였지만, 정작 지휘관의 얼굴은 심각했다- 마치 구겨져 펴질 줄을 모르는 종이처럼.


"설마, 숨기고 있는게 있거나 하진 않겠지."


"예?"

"인간이라던지, 악마라던지. 그들과 교감 이상을 나누는 것은 천계의 법에 어긋나는 짓임을 잘 알텐데."


"... 설마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역시 그렇겠지, 타카이시. 자네는 우리의 붉은 눈이니까."



***



쾅-


약초를 빻고 있던 히카리는, 집의 문이 거칠게 열리자 저도 모르게 총을 집었다. 하지만 눈부신 빛 앞에 익숙한 천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안심하고 총을 내려놓은 그녀는, 그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무슨 일이에요, 타케루?"


"널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겠어."


"그게 무슨 소리에요?"

"천사도, 악마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



히카리는 빛조차 잘 들어오지 않는 어딘가에 있었다. 축축하고 어두컴컴한 이 곳은 그녀가 살 곳이 못되었지만, 그녀는 그를 믿었다. 


"내가 어떻게든 너를 천상으로 데려갈테니까, 조금만 여기서 버텨줘."


그의 약속을 믿고, 히카리는 그곳에 머물렀다.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을 사랑해주고, 또 먹을 것도 가져다주는 타케루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그 동안 타케루는 어떻게든 인간을 천계로 데려오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인간이란 본디 쉽게 악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선이 될 수도 있는 존재니까. 그리고, 히카리는 그가 본 그 어떤 천사보다도 선에 어울리는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몇 달만에 마침내 고대 서적에서 찾아낸 천사가 된 인간의 이야기- 타케루는 그 책을 집어들고 행복한 표정으로 궁전을 나섰다.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는, 히카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채로.


지휘관이 그의 앞에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나타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



"인간이라고요?"


"그래. 우리쪽 천사 한 명이, 어느 조그마한 굴에서 나와 약초를 찾는 여자 인간을 보았다고 하더군. 악마에게 넘어가지 않은 순수한 인간은 정말 오랫만인 것 같아서, 내가 직접 가려고 했지."


히카리. 타케루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그렇게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직접 가신다니, 차라리 제가-"

"아, 그래, 자네도 따라오는게 어때? 착한 인간이라면, 천계로 데려올 수도 있지 않겠나?"


"그- 그렇다면야-"


"그래, 그래, 우리끼리 가 보자구."


상관에게 이끌려 지상으로 내려가는 타케루는 히카리에 대한 걱정과, 천계로 그녀를 데려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섞인 채로, 하늘을 날았다. 그녀가 있는, 익숙한 동굴을 향해.



***



"나는 육품 능천사의 지휘관, 니시타니 신이치다. 인간이여, 모습을 드러내라."


뿜어져 나오는 빛, 낮게 깔리는 목소리. 그 장엄함에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히카리는,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결국 자신의 부모님과 같이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닐까 했지만, 뒤에 서있는 타케루를 보고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실소를 지으며 권총을 꺼내든 신이치 지휘관은, 총구를 그녀에게 겨눴다.


"그럼, 천계의 법에 따라, 너를 말소하겠다. 잘 자라, 인간."


"이게 무슨 짓입니까, 지휘관 님!"

"본보기로 삼으려는 것 뿐이다, 타카이시. 네가 이 하등한 인간과 놀아나는 것을 모를 줄 알았나?"


그 말에, 지휘관을 말리려던 타케루의 손이 우뚝 멈춰섰다.


"인간에 대해 알아보고, 미소를 짓고, 그 붉은 눈이 행복하다는 듯 궁전 내를 쏘다니고... 내가 그렇게 바보로 보였나보지, 타카이시?"


대승을 거두기라도 한 듯, 뒤틀린 미소를 지은 그는 제복모 아래로 타케루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타케루는 그곳에 묵묵히 서있기만 할 뿐이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그의 탓이었다. 괜히 자신이 그녀를 안전하게 해주겠다고 했기에, 자신이 그녀에게 희망을 주었기에, 부주의했기에- 이제 그녀는-


하지만 타케루가 자신을 원망의 눈빛으로 바라볼 히카리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마지막으로 한번 더 그녀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얼굴을 들었을 때 본 것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다 이해한다는 듯, 괜찮다는 듯 따뜻하게 웃고 있는 그녀였다.


"그럼, 마지막으로 할 말은, 인간?"


"... 타케루 군, 나-"


철컥.


히카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타케루는 신이치 지휘관의 관자놀이에 산탄총을 겨눴다.


"그 총, 내려놓으시죠, 지휘관 님."


"인간 하나 때문에 이럴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총을 내려놓으라고 말했을텐데요, 니시타니."


"... 이게 무슨 뜻인지는 네가 더 잘 알겠지? 같은 천사에게 총을 겨눈다는 것?"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일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듯, 몸을 돌려 타케루를 바라본 신이치가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타카이시 타케루가 자신을 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와 몇백년을 같이 싸워온 사람이 아니던가?


"... 우리 모두, 선택을 할 때가 오는 법이니까요."


"하. 악마와 계약을 했구나, 타카이시!"


"아니요."


조심스럽게, 하지만 재빠르게 방아쇠는 당겨졌고, 놀란 표정도 잠시, 니시타니 신이치의 제복은 피로 붉게 물들었다. 땅으로 힘없이 쓰러진 그의 시체와, 손에서 떨어진 권총을 바라본 타케루는, 히카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 또한, 눈물을 흘리면서.


"... 인간과 사랑을, 했습니다."


뭐라고 입을 열려는 히카리에게 쉿- 이라고 말한 타케루는, 자신의 제복모를 그녀에게 푹 씌워주었다. 


"울지 마, 괜찮아."


"하지만- 나 때문에- 날개가!"


처음 통성명 할때도 그런 말을 들었었지. 얼굴에 호선을 그린 타케루의 한때 눈부시게 빛나던 날개는, 검게 타들어가며 떨어져 나갔다. 떨어져 나간 깃털들은 땅에 닿기도 전에 산화해버렸고, 흉측하게 부서지는 날개는 그의 흰자와 함께 짙은 검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괜찮대도."


"타케루-"


"끝까지 살아남아야 해?"


울먹임 때문에 더 이상 말을 하기도 벅찬 듯, 히카리는 떨리는 숨만을 내뱉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녀와 이마를 맞댄 타케루는,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었다.


"내 눈을 기억해 줘, 히카리 쨩. 너 덕분에, 마침내 되찾을 수 있었던- 나의, 푸른 눈동자를."


그 말과 함께, 부서지는 대지는 타케루를 잡아 끌었고, 한없이 나락으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그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잘 있어,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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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octor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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