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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히카 - 운명

연성/장편 2015. 11. 15. 05:27



타케히카 - 운명

2015년 4월 26일


어두컴컴한 하늘 너머, 반짝이는 별들이 하나같이 미소짓고 있는 어느 겨울밤— 지저귀는 새들마저 잠을 청하러 갔는지,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있는 공원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단 하나, 홀로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여린 여자아이에게서 흘러나오는, 속삭이듯 조용한 울음소리만을 제외하고.


오늘은, 오늘은 모두에게 행복한 날이었는데. 왜 어째서? 


입술을 깨물고, 터져나오는 울음을 간신히 삼키고 있는 중학생 야가미 히카리가 자신에게 되물었다.



***



결승전. 


그랬다. 오늘은 그녀의 단짝친구 타카이시 타케루가 속한 농구부가, 다른 중학교와 결승전을 치루는 날. 이상할 것 하나 없는 하루였다. 당연하게도 선택받은 아이들이 모두 모여 그를 응원했고, 그녀 또한 그곳에 있었다. 공을 손에서 놓지 않고 코트를 종횡무진하며 팀을 승리로 이끄는 그를, 또 자신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드는 타케루를 보며, 히카리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시합이 오다이바 중학교 팀의 압승으로 끝난 후, 히카리는 그녀의 타케루의 모든 농구 시합에서 늘 그랬듯이, 수건과 물통을 집어들고, 타케루를 향해 뛰어내려가는 다른 아이들의 뒤를 따랐다.


“장하다 내 동생!”


“너 이 자식, 정말 타고났는걸!”


팀원들과 친구들에게 둘러쌓여 칭찬과 축하를 받고 있던 타케루에게, 어떤 여자아이가 다가온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불쑥 나타난 그 아이에게, 자연스레 타케루의 땀을 닦아주려던 히카리를 포함해서,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히카리는 한눈에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코토네— 그녀는 타케루와, 그리고 히카리와 같은 반이었다. 사교성 좋고, 인기 많고, 여러모로 다른 학생들의 동경을 받는 아이. 그녀도 타케루를 축하해주러 온 것이었을까—


“정말 멋졌어, 타케루 군! 축하해!”


코토네가 자연스레 물통과 수건을 타케루에게 건네며 말했다. 순간 멈칫한 듯한 타케루는 곧이어 환하게 웃으며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였고, 모두들 다시 왁자지껄 그를 축하하는 데 여념이 없어 보였다— 단 한 명, 야가미 히카리를 제외하고.


왜인지 히카리는 그 곳에 가만히 서 있었다. 무언가 자신의 역할을 빼앗긴 듯이. 하지만, 그래. 생각해 보면, 굳이 그녀가 늘 타케루를 챙겨주라는 법은 없었다. 그녀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지만— 아니, 그게 다였다. 친구. 그의 어머니도, 그의 애인도 아닌, 그의 친구. 꼭 그녀만이 그를 챙겨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깨를 으쓱이며 이 상황을 무덤덤하게 넘기려는 히카리였지만, 마음 속에 무언가가 응어리져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정확히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녀를 답답케 하고 있었다.


‘내가 그저 늘 하던 일을 하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뭐,’


그렇게 애써 생각하려는 히카리는,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심 타케루의 손길을 기대한 히카리가 고개를 돌렸지만, 그 곳에는 익숙한 금발의 아이 대신 자신을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는 그녀의 오빠, 야가미 타이치가 있었다.


“괜찮니, 히카리? 거기 멍하니 서서 뭐하는거야?”


“아, 아무것도 아니야, 오빠. 잠깐 딴 생각좀 하고 있었어. 근데, 타케루 군은?”


“씻는다고 들어갔지. 하여간에, 오늘 시합도 이긴 겸, 죠네 집에서 파티를 열기로 했는데-“


“에에?! 내가 언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죠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에이, 내 동생이 우승을 했는데, 그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아, 죠!”


“아니, 그건 그거고!”


말도 안된다는 표정으로 반박하는 죠와, 그런 그에게 반 협박 및 반 설득을 하는 야마토를 바라보며 얼굴에 호선을 그린 타이치가, 윙크하며 히카리에게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타케루한테 무작정 얘기를 하긴 했지만 말야, 좀 데리고 와주지 않겠어?”


“알았어, 오빠.” 히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렇게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과 죠와 어깨동무를 하며 야마토의 편을 들어주는 타이치를 뒤로 한 채, 히카리는 웃으며 체육관을 떠났다. 


마음 속에 진 응어리는 이미 잊어버린 채로.



***



히카리는, 양손에 음료수를 하나씩 쥐고 헐레벌떡 계단을 뛰어내려오고 있었다.


‘왜 하필이면 이럴 때 자판기가 고장이 난담. 타케루 군이 먼저 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계단 아래에서 노을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금발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곧이어 타케루의 이름을 부르려던 히카리는, 그가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저게 누구지?


그녀의 궁금증은, 그림자 속의 인물이 입을 염으로써 해결되었다. 


“오늘 시합 정말 대단했어. 다른 선수들이 쫓아오질 못하던 걸.”


코토네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왜인지 떨리고 있었다— 타케루가 뭐라고 대답을 했지만, 히카리는 코토네의 다음 말에 정신이 팔려, 그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말인데, 있잖아, 타케루 군... 실은, 네가 이번 시합에서 승리하면, 고백하기로 마음 먹었었거든.”


“에—“


“나랑, 사귀어주지 않을래?”


계단 위에 서있던 히카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그녀의 친구가 방금 고백을 받았는데— 그것도, 저렇게나 인기 많은 여자아이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그가 그녀와 사귀기로 결정한다면 그를 축하해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응당 친구로써의 도리가 아닌가? 하지만, 히카리는 그들을 바라볼 수 없었다. 코토네의 다음 말도, 타케루가 뭐라고 하는지도 들을 수 없었다. 마치 멀어져가는 과거의 기억처럼, 그들은 히카리에게서 점점 더 멀리 떠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디지털 세계보다 먼 저 어딘가로.


애초에, 설레는 순정만화 같은 연애 이야기는, 모든 여자아이가 좋아할 법한 소재가 아니었나? 그 대상이 자신의 친구라면, 더더욱. 하지만, 히카리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타케루의 연애사를 바라보고 있자니, 재미보단 불안이— 파도처럼 그녀를 덮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왜?


왜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푸른 눈이 잘 어울리는 저 금발의 아이를 부를 수 없는 것일까. 왜 그녀는 코토네와 타케루가 붙어있는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것일까. 왜 그녀의 심장이, 누군가 쥐어짜는 것처럼 아픈 것일까.


어째서— 마치 세상의 사활이 걸린 것 마냥 초조함과 불안함이 그녀를 엄습하는 걸까?


차가운 느낌이 그녀를 뱀처럼 감싸올랐고, 알 수 없이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한 채, 히카리는 타케루와 코토네를 뒤로 하고 계단을 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발자국 소리를 타케루가 들은 것인지, 아니면 그저 코토네에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는지는 몰랐지만, 타케루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하지만, 어느 쪽이었던, 마치 지금 바깥 풍경처럼— 겨울 바람 앞에 하늘하늘 떨어져 바스라지는 나뭇잎처럼— 타케루의 목소리는 히카리에게 닿지 못했다.





살을 에는듯한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밤, 검은 비니를 쓰고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남자아이 하나가 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가로등 아래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언질받은 대로 자신의 선배, 키도 죠의 집으로 찾아간 타카이시 타케루는,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가 자신과 원래 같이 왔어야 했음을, 그리고 그녀가 그러지 않았음을— 즉, 어딘가로 사라졌음을 깨닫고, 그녀를 찾으러 학교를 샅샅이 뒤지다 뛰쳐나온 참이었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입술을 깨문 타케루는, 왜인지 코토네가 자신에게 고백할 때 얼핏 들었던 발소리가, 히카리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었다.


어느 쪽이던, 히카리를 찾아야만 했다.



***



결승전.


오늘은 그의 농구부가 그렇게 고대해왔던 결승전이었다. 타케루가 오다이바 중학교에, 그리고 나아가 농구부에 입부한 이후로, 그들은 연전연승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시합에서 승리함으로써, 무패의 전설에 쐐기를 박을 참이었다.


상대의 전략을 분석하고 끊임없이 연습한 만큼, 타케루와 그의 팀원들은 시합을 승리로 이끌었고, 타케루는 골을 넣을 때마다 그의 친구들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야가미 히카리를 향해서.


시합이 끝난 후, 이슬처럼 맺힌 땀을 닦아낸 타케루는,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친구들을 향해 다가갔다. 짧게 친 머리를 쓸어넘기는 형도, 성게같은 머리와 단발머리를 한 동갑내기 친구들도, 그리고 모험을 같이 하며 동고동락한 다른 선택받은 아이들도 그를 보며 축하해주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그의 단 한명만을 향하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언제나같이 따스한 미소를 짓고 있는 히카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 어떤 건강식보다 빠르게 시합의 고된 피로가 사라져가는 듯 했다. 그렇게 그녀에게 손을 뻗으려는 순간—


“정말 멋졌어, 타케루 군! 축하해!”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오며 외쳤다. 순간 움찔한 타케루는 옆을 바라보았고, 같은 반의 코토네가 자신을 보며 싱긋 웃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잠시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던 타케루는, 곧이어 웃음으로 그녀에게 답하며 물통과 수건을 받아들였다.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고, 물로 메마른 목을 축였지만, 그의 심장은 무언가를 더 원하고 있었다. 익숙한 손길이, 익숙한 목소리가, 익숙한 미소가 필요했다. 


하지만 왜?


‘히카리 쨩이 늘 날 챙겨줬으니까, 그냥 익숙하지 않아서였을까.’ 타케루가 물을 마시며 곰곰히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그녀에게 무언가를 더 바라고 있었다. 친구로써의 친근함이 아닌 무언가를.


히카리 쨩은 나에게 정확히 뭐지?


하지만, 타케루가 자신의 물음에 답하기도 전에, 히카리의 오빠, 야가미 타이치가 말썽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기에, 타케루는 자신만의 망상에서 빠져나와야만 했다.


“있잖아 타케루, 너 우승 기념으로, 죠네 집에서 파티를 열려고 하는데.”


“네? 하지만 죠 상은 그런 말을—“


“쉿. 죠네 집에 그냥 쳐들어 갈거야. 다들 가 있을테니까, 씻고 정리하고 와, 알았지?”


“푸하, 네.”


터지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대답하는 타케루를 보며 미소지은 타이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곧이어 똑같은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으며, 야마토에게로 다가갔다.


피식— 실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은 타케루는, 고개를 들어 히카리를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무언가에 집중하듯이 가만히 서 있는 그녀를 본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볼까 생각했지만, 곧이어 타이치가 그녀의 어깨를 잡는 것을 보고, 마음을 돌렸다.


다시 자신의 질문을 곰곰히 되짚어보며, 타케루는 샤워실로 향했다.


우리는 친구일까?


아니면 그 이상일까?



***



아직도 자신의 질문에 해답을 찾지 못한 타케루가, 머리를 긁적이며 가방을 들고 락커룸을 빠져나왔다. 밖이 춥다는 것도 잊어버렸는지, 외투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그는, 죠의 집까지 걸어가며 혼자 생각할 시간도 가질 겸, 복도를 돌아 학교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예상치 못한 사람과 마주치고 말았다.


“안녕, 타케루 군.”


“어, 어어, 코토네 쨩. 안녕.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어, 응.”


자신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코토네를 바라보며, 타케루는 그녀가 자신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곧이어, 그 할말이 무엇인지도.


“오늘 시합 정말 대단했어. 다른 선수들이 쫓아오질 못하던 걸.”


“아— 하하. 고마워. 아, 수건이랑 물도.”


타케루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생각은 다시 히카리를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어물쩡 말하는 코토네의 목소리가 그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그는 다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마주보았다.


“실은, 네가 이번 시합에서 승리하면, 고백하기로 마음 먹었었거든.”


“에—“


“나랑, 사귀어주지 않을래?”


타케루는 대답을 망설였다. 어찌보면 차가울 수도 있지만, 이미 그가 그녀의 의중을 알아차렸을 때부터,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코토네는 그의 친한 친구일 뿐이었다. 


하지만, 히카리는? 히카리는 과연 그의 그저 또다른 친한 친구일 뿐일까?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그녀와의 대화에, 그녀와의 접촉에 너무 익숙해져, 자신이 마음 속에서 키우고 있는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게 아니라고, 그녀도 그저 친구일 뿐이라고 생각하려고 하고 있지만, 코토네가 자신에게 고백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히카리라면, 사랑을 논하려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자신의 머릿속에 그려진 것이 히카리라면—


그렇게, 그의 머릿속은 이미 다른 종착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무언가 해답이 보이는 듯하달까— 마치 그의 정신이 이 곳에서 빠져나와 다른 곳을 떠돌고 있는 느낌. 어둠 속에서 자신을 비추는 무한한 빛(光)에, 히카리(光)에 이끌려.


그 순간, 어디선가 들려온 우당탕 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말없이 서있던 그의 환상을 깨뜨렸고, 그는 저도 모르게 “히카리?” 라고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었다.


“타케루 군?”


“아— 아? 아... 미안, 코토네 쨩. 넌 좋은 친구지만, 난 널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아.”


타케루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코토네는 씁쓸한 미소로 화답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네... 역시, 히카리 쨩 때문인거지?”


“엣—?”


하지만, 타케루가 차마 대답할 새도 없이, 그녀는 우승을 축하한다고, 대답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내일 학교에서 보자는 말과 함께 복도를 돌아 그림자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자신이 저도 모르게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묻고 있던 질문에 대해 마침내 답을 얻은 타케루를 뒤로 하고.



***



조용한 밤. 어둠이 내려앉은 공원 한가운데에서, 타케루는 히카리를 마침내 찾아내고야 말았다. 이 추운 날, 외투 하나 제대로 껴입지 않고 벤치에 앉아 훌쩍이고 있는 그녀를.


아무 말 없이, 그는 자신의 외투를 벗었다.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자신의 옷을 덮어준 타케루는, 깜짝 놀라 자신을 돌아보는 히카리를 향해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디 갔었어. 다들 한참 찾고 있었다구.”


“... 미안.”


히카리가 타케루의 질문에 대답하는 데에는 한참이 걸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추궁하지 않겠다는 듯, 타케루는 조용히 그녀 옆에 앉아 그녀의 어깨를 감싸주고 있을 뿐이었다.


“... 왜 울고 있었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왜 여기 혼자 있었던거야, 감기 걸리게.”


타케루가 왼손을 천천히 들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살포시 닦아주며 얘기했지만, 그녀는 아무 답이 없었다.


“... 실은, 코토네랑 있는 거 봤어.”


그 상태로 미동도 않고 몇 분이 지났을까. 딸꾹질 비슷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마침내 히카리가 입을 열었다.


‘그 때 내가 들었던 발자국 소리가 히카리가 맞았구나,’ 타케루가 생각했지만, 그가 코토네의 고백을 거절했다고 말하기도 전에, 히카리가 다시금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실은, 그 때 고백하는 걸 봤었어. 그런데— 그,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나도 모르게 그만— 그만 도망쳐 버렸어. 나도— 나도 왜 이러는지, 내가— 왜 울고 있는지—“


벌벌 떨면서, 버벅대면서 말하는 히카리의 변명 아닌 변명은, 타케루의 손이 그녀의 어깨와 머리를 감싸안고 자신에게 끌어당겨 그녀를 꽉 안아줌으로써, 뚝 끊기고 말았다.


자신의 어깨에 말없이 울고 있는 히카리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던 그는, 조용히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고백, 거절했어.”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있던 히카리의 울음이 뚝 그쳤다.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레 잡고 자신의 어깨에서 그녀를 떼어놓은 타케루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히카리의 마호가니 색 눈을 바라보았다. 붉은 빛이 감도는, 마치 보석같은 그녀의 눈동자. 사람을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의 눈동자— 마치, 마법에 홀려버린 듯, 그는 왼손을 들어 그녀의 젖은 뺨을 어루만지며, 히카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히카리 또한, 바다처럼 넓은 타케루의 사파이어 빛의 두 눈동자에서 눈을 뗄 생각이 없어보였다. 자기도 모르게, 파르르 눈꺼풀을 감은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그의 허리를 휘어잡았다.

그들은 늘 서로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무언가 사뭇 달랐다.


점점 더 서로에게 다가가며, 희망의 문장의 소유자와 빛의 문장의 소유자는 서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 연결된 듯한 느낌. 처음 모험을 하며 만났을 때에도, 두번째로 ‘선택’받아 또다시 디지털 세계를 구할 때에도 느꼈던 그 소름돋는 감정이— 둘을 고리처럼 휘감았다. 


시간마저도 그들의 입술이 닿는 순간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캄캄한 공원 한가운데에서, 따뜻한 달빛에 흠뻑 젖은 두 아이는, 말 없이 영원같았던 그 순간을 음미했다.


헉— 하고 들이마쉬는 숨과 함께, 희망의 빛으로 이어진 입맞춤이 끝을 맺었을 때, 두 아이는 아무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으면서도 너무 순식간에 끝나버린 그 순간.


다시 서로를 향해 고개를 움직이는 그들은, 그 어떤 조명 없이도, 충분히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그들을 방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운명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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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다이 - 가깝고도 먼

2015년 4월 6일


푸욱—


살이 찢기는 소리. 온몸이 흥건하게 붉은 액체로 젖어오는 느낌. 터질듯한 머리가 더 빙빙 돌아갔다. 두 눈을 꼭 감은채로 팽 하고 온 몸에 퍼질 고통을 기다렸지만, 그 어떤 느낌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런 게 죽는다는 걸까. 정녕 그렇다면, 의외로 편안한 저승길이 될지도.


하지만 주위의 시끄러운 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창공을 가르는 아군들의 울부짖음도, 손가락 끝에서부터 양껏 죽음의 악취를 풍기는 적의 웃음소리도, 모두 다 그대로였다. 자신이 죽었다면, 죽고 있다면— 이 모든 것이 사라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전장의 한가운데에 서 있던 이치죠우지 켄은 두 눈을 게슴츠레 떴고, 자신 앞에 서있는 흐릿한 형체를, 그리고 그 형체가 자신을 돌아보며 땅으로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모든 소리가 잦아들었고, 세상이 무너졌다. 


이런 게 죽음이라면, 죽고 싶지 않아—


하지만 신은,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그에게 죽음보다 더 가혹한 처벌을 내렸다.



***



무릎을 꿇은 켄은, 자신의 밑에 쓰러져 있는 형체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자신의 손에 흥건하게 묻은 붉은 피. 하지만 그 피는 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눈물로 흐릿해진 눈 앞의 형체를 그는 계속 더듬거렸다. 눈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지만, 자신 앞에 누워있는 존재의 배를 뚫고 나온 날카로운 무언가를 그는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치 카메라가 초점을 잡듯이, 쓰러져있는 아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온 몸으로, 그리고 이젠 바닥에 웅덩이처럼 퍼지고 있는 붉은 피처럼 붉디 붉은 머릿결, 그리고 반쯤 부서져버린 고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켄은 그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려 했지만, 미소지은 그 아이의 손이 먼저 켄의 뺨에 닿았다.


“다행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원망하듯, 켄의 몸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말을 하려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자신을 지키려 목숨까지 내다버린 이 사람을 보면서 그는 입을 뻥긋거렸지만, 그가 하려던 말은 목에 걸린 생선 가시마냥 나오질 않았다. 


출혈이 심할때는—


이성을 되찾으려 노력했지만, 이미 놓쳐버린 열차였다. 홍수처럼 닥쳐오는 감정이 눈물이 되어 피 묻은 켄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부들거리는 손으로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는 아이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그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흐르는 눈물을 피 묻은 엄지로 닦았다.


“왜 울어, 울기는.”


무기력한 미소를 지은 그 아이의 손이 힘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안돼.


안 돼.


안된다고.


죽지 마. 안돼. 여기서 이렇게.


안된단 말이야—


마치 울어도 된다는 큐를 받은듯, 켄은 피칠갑이 된 아이의 몸을 붙잡고 목놓아 울었다. 위험하다고, 몸을 피하라고 외치는 황제드라몬의 목소리도, 지고있는 그들의 싸움을 돕기 위해 나타난 페가수스몬과 네페르몬도, 그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이미 세상은 끝났는데, 왜 저들은 아직도 반항하고 있는걸까.

이미 모든 것이...


그 생각에 반응하듯 눈 앞이 다시금 흐릿해진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그 아이의 몸 위로 쓰러졌다.


한 때 푸른색이었던 그 아이의— 다이스케의— 붉은색으로 점칠된 디지바이스를 손에 쥔 채로. 



***



모든 것은 평화롭기만 하던 어느 여름날에 시작되었다. 


처음 히카리를 데려갔을 때만큼 갑작스럽게 어둠의 바다는 다시금 아이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드라고몬의 부대를 진두지휘하는 마왕몬과 함께, 또다른 위협이 두 세계를 덮쳤다.


아이들은 용감하게 싸웠지만, 바퀴벌레처럼 쏟아져 나오는 이 디지몬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존재들과 맞서 싸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칭롱몬의 도움으로 궁극체로 진화할 수 있게된 아이들이었지만, 수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아이들은 열세에 몰려있었다.


코시로의 의견에 따르면, 이 지고 있는 싸움을 타파할 방법은 단 하나였다— 이 전쟁을 모두 내려다보고 있는 적의 수장을, 마왕몬을, 쓰러뜨리는 것.


킹이 쓰러지면 다른 말들은 자연스레 무릎을 꿇는다— 

체크메이트. 그랬다. 


이미 지칠대로 지치고 다칠대로 다친 아이들은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체스판으로 생각하는 듯한 코시로의 말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다이스케만은 달랐다.


“그러니까, 누군가 적진 한가운데에 들어가서 그 녀석을 혼쭐내버리면 된다는 거 아냐?”


무식하리만치 단순한 얘기였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늘 타케루나 코시로와 체스를 즐겨두던 켄은 상대를 꾀어내어 승리를 쟁취하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코시로가 얘기한 것이, 다이스케가 자처한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미끼.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했던가. 게임에서도, 전쟁에서도, 늘 있는 일이었다. 상대가 혹할만한 먹잇감을 던진 다음, 그들이 그것에 정신이 팔렸을 때 공격하는 것. 


하지만, 미끼의 운명은—


적에게 비하면, 다이스케는 힘 없는 폰이었다. 퀸으로, 나이트로, 비숍으로 진을 치고 있는 적진 한가운데에 무식하게 뛰어드는 폰. 성과없이 잡아먹히겠지만, 상대의 헛점을 찌를 수 있는 빈틈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폰.


“다이스케—“


무거운 침묵이 깔린 가운데, 타이치가 조용히 다이스케의 어깨를 잡았지만, 그는 모든 걸 안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선배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자처하고 있는 이 역할이 무엇인지 가장 잘 깨닫고 있는 것은 다이스케 그 자신이었다. 앉아서 이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탁상공론이나 펼치고 있는 켄과 다르게, 다이스케는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왜일까, 웃음이 나왔다. 

상황과 전혀 맞지 않았지만, 전형적인 다이스케같은 저 행동에 켄은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가겠어.”


결심이 선 켄이 나지막이 말했고, 아이들은 일제히 그를 돌아봤다.


“켄, 너 미쳤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기나—“


자신의 옆에 앉아있던 다이스케가 목이 부러질 듯이 빠르게 고개를 돌려 외쳤지만, 곧이어 자신의 손을 꾹 잡는 켄의 행동에 말문이 막힌 듯, 뚝 하고 중간에 말을 끊었다.


“나도 잘 알아. 하지만 다이스케 군, 설마 황제드라몬 없이, 혼자서 마왕몬을 상대할 셈이야?”


웃으며 켄이 대답했고, 다이스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


그 때.

그 때 그를 말렸더라면.


다이스케에게 이게 무슨 미친 짓이냐며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댔더라면.

주먹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그 녀석을 붙잡아둘 수 있었더라면.

멍청하게 거기서 그의 바보같은 작전에 굴복하지 않았었더라면.


마왕몬의 함정에 보기좋게 빠져 적들에게 포위당할리도 없었을 것이고, 그의 부하들에게 공격당할리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그저 죽음을 받아들이려 했을리도—


그리고, 그 녀석이 대신 자신 앞에 뛰어드는 일도—

모두 없었을텐데.


내 탓.


그랬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탓이었다.


나 때문에.


멍청한 나 때문에...



허억—


날카롭게 들이마쉬는 숨과 함께, 켄은 두 눈을 떴다.


눈부신 흰 색으로 도배된 흐릿한 두 눈 앞의 세상에, 다이스케의 얼굴이 아련거렸다. 닿을 듯 닿지 못할 거리에서 웃고 있는 그 녀석을 향해 손을 휘저었지만, 닿을 수 없었다. 


같이 가. 


하고 싶은 말이 잔뜩인데, 어디 가는거야.

아직 내 말 끝나지 않았단 말이야.


가지마.


고마워.


미안해.


... 사—


그 순간, 누군가 허공을 휘젓고 있던 그의 손을 잡았고, 흐릿해지던 눈의 초점이 갑자기 돌아온 켄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아니, 그건 다이스케가 아니었다. 

몇몇 선택받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그의 침대 옆에 모여있었다.


켄은 그들이 입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지만, 그 어떤 것도 듣지 못했다.

다시 고개를 천장으로 돌린 그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자각했다.


병원.


그는 무책임하게 살아남아, 혼자 병실에 누워있었다.



***



“켄—“


멍하니 침대에 앉아 벽을 응시하고 있는 보랏빛 머릿결의 아이에게 아이들이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그는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몇 시간동안이나 그렇게 앉아있는 그를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보는 아이들이었지만, 켄은 그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있었다. 마치, 허공에 있는 누군가와 대화하는데 열중하고 있는 듯.


“이치죠우지 군. 다이스케 군 말인데...”


켄이 마침내 고개를 돌린 것은 타케루가 조용히 다이스케의 이름을 꺼냈을 때였다. 


그 후에 무슨 말이 올지, 켄은 알지 못했다. 

살아남았어? 죽었어? 다 네 탓이야? 


그래. 그거였다.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다이스케가 죽었어.


너 때문—


“아직 살아있어.” 


쌕쌕대던 켄의 숨소리가 순간 멈췄다. 


“의식불명 상태긴 하지만— 수술이 성공적이어서—“


그 다음 말은 더이상 켄에게 들리지 않았다. 이불을 던지고 일어나려고 한 그였지만, 곧이어 자신의 다리에 심각한 통증을 느낀 그는, 다시 침대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제서야, 켄은 자신이 깁스를 하고 있음을, 자신의 온 몸이 붕대로 감겨져 있음을 알아챘다. 하지만 이런 생채기 따위가 중요한게 아니었다— 지금은 자신의 몸이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다이스케 군을 봐야겠어,”


켄이 중얼거리며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의자에 앉아있던 타케루가 벌떡 일어나 그런 그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그 몸 상태로 어딜 가려는 거야. 제발 자기 몸도 생각—“


“내 몸이 뭐가 어째서!”


병원에서 깨어난 뒤로 자신에 대한 화를 참고 있던 켄의 감정이, 마치 부글부글 끓어오른 활화산처럼 폭발해버렸다. 


늘 선하게 미소만 짓던 아이의 분노 섞인 목소리에, 아이들은 모두 순간 움찔했다. 

켄의 몸은, 마치 그때처럼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켄 군 탓이 아니야—“


타케루 뒤에 서있던 히카리가 조용히 말했지만, 이미 켄에겐 들리지 않았다. 아이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몸을 일으킨 켄은, 이미 그를 말리기를 포기한 이오리에게 다이스케의 병실 번호를 듣고, 절뚝거리며 자신의 병실을 박차고 나갔다.



***



드르륵-


켄이 병실의 문을 열자, 구석의 침대 옆에 앉아있던 타이치와 다이스케의 누나 준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고, 곧이어 켄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켄—“


걱정스런 표정을 지은 죠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지만, 타이치가 곧이어 그의 어깨를 잡더니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멍하니 문 앞에 서있는 켄을 뒤로한 타이치는 침대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 무어라 말했고, 그러자 곧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하나둘씩 병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침대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켄의 어깨를 꽉 잡았다 놓은 타이치는, 말 없이 마지막으로 다이스케의 병실을 떠났다.


절뚝, 절뚝—


천천히 다이스케의 침대로 걸어가는 시간이 마치 영원같았다. 


의식불명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래서, 그가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따위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뭐라고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구해줘서 고마워? 바보같은 짓 해서 미안해?


절뚝, 절뚝— 턱.


침대 앞에 다다른 그는, 말없이 다이스케를 내려다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꿰맨 자국이 몇 군데 있었고, 제대로 닦아내지 않았는지 말라붙은 핏자국이 이마에 남아있었다.


켄은 천천히 손을 뻗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것만 같이 핏자국이 서려있는 그의 이마를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마치,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고, 끝까지 자신을 지켜주고 걱정해주다 정신을 잃은 그를 붙잡고 울기만 하다가 기절해버린 자신이 새삼 혐오스러워져 버린걸까. 입술을 굳게 깨물고 손을 천천히 거둬들인 켄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일어나줘, 다이스케 군.”


떨리는 목소리로 마침내 말을 내뱉었지만, 어찌보면 당연하게도 그 어떤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


천천히 다시 손을 뻗었지만, 왜인지 그를 다시 만질 수 없었다. 바로 앞에 자신을 구해준 아이가 누워있음에도, 닿지 못할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대로, 영원히 닿지 못할까 두려웠다.


“미안해.”


켄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더듬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고마워.”


“... 좋아해.”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켄은 이번에도 또 다이스케를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제발.”


“깨어나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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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히카 - 너무 커버린 너

2015년 3월 20일


특별한 사건은, 늘 가장 평범한 날에 찾아오는 법이라 했던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어느날-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 한 때 자신의 형제남매가 입었던 것 같은 녹색 교복을 입은 두 아이가 왁자지껄 떠들며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림자 밑에서 울어대는 매미가 알려주듯, 덥디 더운 이 한여름날에 고개를 끄덕이며 키득이던 금발의 아이는, 뜨거운 날씨와 대조되는 그의 사파이어빛 눈을 그의 옆에 있던 학우에게서 떼지 않고 있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던 밝은 갈색 머리를 핀으로 고정한 여자아이 또한, 그녀의 붉은 빛이 감도는 마호가니 색의 눈동자를 그에게서 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느날과 다를 바 없는 하굣길이었다.

아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이야, 타케루 군—“ 


보랏빛 단발머리를 지닌 아이와 꼭 누군가를 연상시키듯 고글을 쓴 아이의 평범할 듯 평범하지 못했던 축구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히카리가, 마침내 키득거림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자연스레 키가 더 큰 타케루의 눈을 마주하려 고개를 위로 들었을 때에는, 늘 그녀를 내려봐주던 강아지처럼 처진 눈 대신, 붉은 벽돌만이 히카리를 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갑작스레 사라진 그녀의 하굣길 동무의 행방에 당황한 히카리는 그가 어디 숨어있는게 아닐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골목길 하나 없이 일자로 이어지는 뻥 뚫린 길가에, 사람이— 하물며, 그처럼 키 크고 눈에 잘 띄는 아이가— 숨을 곳은 없어 보였다.


머리를 긁적이며 그의 이름을 외치려던 히카리는, 그제서야 누군가 자신의 옷을 잡아당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여기가 어디에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내린 히카리는, 믿을 수 없는 광경과 마주했다.


뒤집어 쓴 초록색 모자. 매치되는 색의 긴팔 셔츠. 그녀가 잘 아는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렸을 때에도 변함없이 빛나는 금발 머리와 호수같은 파란 눈동자.


이건 의심의 여지 없이 그녀가 아는 타케루였다.


“어— 어... 타케루 군?”


“절 아세요?”


몇년 전, 디지털 세계에서 보았던 그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타케루를 말없이 바라보던 히카리는, 이것이 어쩌면 또다른 나쁜 디지몬의 소행이 아닐까 생각했고, 이게 진짜 타케루인지 시험해보기로 했다. 


“너... 타카이시 타케루 맞지?”


“그런데요?”


“이시다 야마토가 형이고?”


“형아를 아세요?”


“... 파타몬은 어디있니?”


그 질문에 순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지은 타케루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듯, 

끙.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를 긁적이더니, 히카리를 다시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디지털 세계에 있어요. 못 만난지 꽤 된걸요.”


옛날 같았으면 그런 얘기를 하면서 울었을 텐데. 히카리가 생각했다.


“그렇구나.”


“누나도 디지몬에 대해서 알아요?”


“...”


이번엔, 히카리가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헤맬 차례였다.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당황스러웠던 히카리였지만, 곧 현재의 타케루가 여기 없다는 것은, 타케루가 무슨 연유에선지 어려져 버렸다는 뜻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얘기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곧이어 솔직한게 좋은 것이라고 얘기하던 어떤 핑크빛 머리의 언니가 생각난 그녀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꼬마 타케루에게 사실을 털어놓기로 결정했다.


“실은 말야 타케루 군, 타케루 군이 어려져 버린 것 같아.”


“에?”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누나가 누군데요?”


“내가 히카리야. 중학생이 된 야가미 히카리.”


“에에엣? 히— 히카리? ... 누나?”


어정쩡하게 뒤에 존칭을 붙이는 타케루를 보며 히카리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그러면, 히카리... 누나, 파타몬은 잘 지내?”


“그럼, 잘 지내지.”


“테이르몬도?”


“물론.”


“누나도?”


“그럼, 잘 지내지.”


“누난 나 없이도 잘 지내?”


“응? 무슨 소리야, 타케—“


“난 아니야.”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끊은 타케루를 바라보던 히카리는, 그제서야 그들의 첫번째 여행이 끝났을 때를 기억해냈다. 그래, 타케루는 첫 모험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오다이바에서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갔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 다시 만나 그들의 두번째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그들은 다시 만나지 못했었었으니.


“난 안 괜찮아.”


타케루가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나 솔직하고 귀여울 때도 있었나, 히카리가 새삼스레 기억을 되짚어보며 생각했다. 확실히, 늘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지금 그녀의 동갑내기 소꿉친구보다 훨씬 더 순수한 그의 어린 시절이라...


“아냐, 나도 타케루 군을 못 봤었을 때 슬펐었는걸! 그래도 괜찮아, 우리, 곧 다시 만날테니까.”


“정말?”


“그럼. 5학년 때 모두 모여서 디지털 세계에 다시 갔었는 걸.”


“파타몬도 다시 볼 수 있는거야?”


“물론이지.”


“헤에... 그때도 나쁜 디지몬이랑 싸웠어?”


“응, 그랬지.”


“혹시— 혹시 파타몬은...”


타케루가 말끝을 흐렸지만, 히카리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곧 알아차렸다.


“아냐, 아무 일 없었어. 걱정하지 마.”


“다행이다... 누나는 나쁜 일 없었어?”


“음— 5학년 때 어둠의 바다라는 곳으로 끌려갔었지.”


“무서웠어?”


“응, 오빠도, 테이르몬도 없었는걸.”


“혼자는 무서워. “


“그 때 타케루 군이 구하러 와줬었어.”


“헤에—”


“멋지지? 3년 후의 너는.”


조금 전의 찡그린 표정은 어디 갔는지, 3년 후의 자신을 생각하며 싱글벙글 웃고 있는 타케루를 바라보고 있던 히카리가 엄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타케루 군이 이렇게 작아지니까 귀엽다.”


“에에— 누나, 그런 말은—”


“응? 왜, 싫어?”


“당연하지! 이제 다 컸다구!”


“귀여워...”


“아냐... 누나가— 누나가 더 귀여워... 요!”


“귀여워...”


히카리가 키득거리며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타케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이고 꼼지락거리는 자신의 발을 바라보고 있던 타케루가, 화제를 전환하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누나, 중학생의 타케루는 어때?”


“글쎄. 어떨 것 같아?”


“음— 키도 크구! 공부도 잘 하구! 멋있구!”


“하핫. 그래—”


“그리고!”


“그리고?”


“히카리 누나를 좋아하고 있을 거야!”


갑작스런 말에 할말을 잃은 히카리는 타케루를 쳐다만 볼 뿐이었지만, 그렇게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히카리를 올려다본 타케루는, 그러던지 말던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누나는?”


“으— 응?”


“누나는 내가 제일 좋지?”


타케루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터져나오는 실소를 참을 수 없었던 히카리는, 대답을 기대하고 있는 타케루를 쳐다보며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오빠가 좋아.”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아닌 듯, 타케루는 벌떡 일어나더니, “타이치 혀어어어엉아—!” 라고 한참 공부하고 있을 (아니, 어쩌면 야마토 오빠와 놀러갔을지도, 히카리는 생각했다.) 타이치의 이름을 허공에 대고 불렀다.


“왜 그래, 어디 가?”


“타이치 형아한테 갈거야! 누나 미워!”


“푸핫—”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타케루였지만, 히카리는 웃음이 터져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에이, 장난이야, 타케루 군. 가지 마.”


그리고, 그렇게 중학생 히카리는 어린 일곱 살 타케루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비록 늘 얘기를 나누곤 하지만, 이렇게 마음을 터놓고 얘기한 것이 얼마만일까— 히카리는 생각했다.


“타케루 군.”


“응?”


“타케루 군이 원래대로 돌아오면 조금 섭섭할 것 같은데.”


“왜?”


“글쎄— 귀엽고, 솔직하잖아. 날 좋아해주고.”


“중학생의 나는 아니야?”


히카리는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타케루에겐 뭐랄까, 마음의 장벽이 있는 것만 같았다. 가장 마음 고생이 심할테면서도, 안에서 가장 힘들어할 때에도, 늘 겉으로는 웃고 다른 사람들을 대해주는 그. 그를 그렇게 잘 알았기에 오히려 그의 마음을 가늠할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타케루의 '진심'을.


“... 잘 모르겠어.”


히카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다니?”


“난 그대로야.”


“타케루 군—”


“중학생이 되서도, 난 그대로일거야.”


“헤에. 하지만 중학생이 된 타케루 군은 예전처럼 자신의 마음을 말해주지 않는 걸.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게 아닐까?”


“아니야!”


“그래?”


“난 언제나 히카리에게 솔직한 걸!”


“에—”


“히카리 누나에겐 마음을 숨기지 않을꺼야!”


히카리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얼굴에 호선을 그리며 타케루의 머리를 쓰담을 뿐이었다.


“그럼, 약속해줄래?”


“뭘?”


“다시 돌아와서도, 지금 말했던 것처럼, 솔직해지겠다고.”


하늘을 올려다본 히카리가, 갑작스레 부는 바람을 느끼며 말했다. 어려진 타케루와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더위도, 시간도 모두 망각해버린 것 같았다. 눈쌀을 찡그리게 내려쬐는 햇빛 너머로, 누군가의 푸른 눈을 연상케 하는 하늘을 바라보던 그녀에 귓가에, 마치 멀어져가는 옛 연인의 작별인사같은 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이지, 약속할게! 남아일언중천금인걸.”


“핫. 타케루 군, 그런 말도 알—”


하지만 히카리가 다시 고개를 내렸을 때, 타케루는 자취를 감춰 버린 것 같았다. 데자뷰일까, 마치 이 모든 일의 시작처럼,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 처진 눈 대신, 익숙한 붉은 벽돌만이 그녀를 마주하고 있을 뿐.


“꿈이었을까.”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히카리 앞에, 다시, 중학생의 타케루가 나타났다.


“히카리 쨩! 찾고 있었잖아.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던 거야?”


“다시 돌아왔네.”


“에? 무슨 소리야?”


“... 약속은?”


“무슨 약속?”


“... 아무것도 아냐. 걱정하게 해서 미안. 어서 가자.”


히카리가 쓴웃음을 짓고는, 무릎을 탈탈 털고 가방을 집어들며 말했다.


아무일 없다는 듯이 길을 따라 걸어가는 히카리를, 타케루는 그저 쳐다만 볼 뿐이었다. 원래 같으면 그녀를 따라가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든게 괜찮은 것인지 물어볼 그였지만, 그녀를 찾아 헤매이느라 흘린듯한 땀에 젖은 금발 머리를 지닌 그 아이는, 왜인지 그 자리에 그저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입술을 깨물며 멀어져 가는 그녀를 바라보던 타케루가, 입을 열었다.


“잊지 않았어—”


우뚝 멈춰선 히카리의 뒷모습에 대고, 그가 조용히 덧붙였다.


“... 남아일언중천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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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몬 - 기다림

연성/단편 2015. 11. 15. 04:46

디지몬 - 기다림

2015년 10월 11일


"타케루가 보고싶어,"


베개처럼 한없이 푹신할 것 같은, 조그맣고 오동통한 디지몬 하나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토코몬..."


목에 빛나는 목걸이를 두른 강아지처럼 생긴 디지몬이 뭐라고 위로를 하려 했지만, 곧이어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건, 둥글게 모여있는 다른 디지몬들도 마찬가지였다.


구름마저도 닿지 못하는 높은 산 정상은, 이 디지털 월드의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구경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 새로 마을을 짓고 자신의 인간 파트너들과 행복한 밤을 보내는 다른 디지몬들과 다르게, 열두마리의 디지몬은 이 무겐산 정상에, 조용히 모여있었다.


마침내 그 무거운 적막을 깨뜨린 것은, 빚다 만 떡처럼 생긴 조그만 디지몬의 한마디였다.


"코시로 항은... 코시로 항은 꼭 돌아올끼라예."

 

"맞아 맞아! 다이스케도 꼭 돌아올거야!" "켄도!" "죠도!" "야마토도!" 


모든 디지몬들이 하나같이 뛰어오르며 파트너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지만, 딱 한 디지몬만이- 분홍색의, 쿠션같이 생긴 디지몬 하나만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얘들아, 아이들이 어디로 떠났는지 잘 알잖아."


코로몬이 조용히 말을 꺼내자, 삽시간에 침묵은 다시 조용한 산 정상을 찾아왔다.


"하지만- 하지만 아이들의 조그만 아이들도-"


"자식이라고 하는거야," 타네몬의 말을 포로몬이 고쳐줬지만, 타네몬은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이제 다 늠름하게 컸는걸! 그러니까, 이제 미미가, 그리고 다른 아이들이-"


"타이치가 얘기해줬었어," 지팡이를 내려놓고 자신을 끌어안던 자신의 파트너를 회상하던 코로몬이, 말을 끊었다. "현실 세계는, 디지털 세계랑 다르다고."


"그러면, 계속 기다리면 되지 뭐."


대뜸 머리에 뿔이 달린 츠노몬이 입을 열자, 디지몬들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우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계속 아이들을 기다려왔잖아? 야마토가, 그리고 다른 선택받은 아이들이, 우리를 찾아줄때까지.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츠노몬이 치비몬, 포로몬, 우파몬 그리고 미노몬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이스케네가 너희를 찾아줄때까지 깊은 잠에서 그들을 기다려왔잖아."


"그래, 우리가 얼마나 긴 시간을 기다려왔는데, 이쯤이라면!"


머리에 풀을 달고 있는 표코몬이 방방 뛰면서 얘기하자, 다른 디지몬들도 곧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토코몬은 아직도 울먹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것을 본 츠노몬은 그에게 몸을 기대며 말했다.


"너무 슬픈 표정 짓지 마, 토코몬."


"하지만.."


"헤어지기 전에, 타케루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 기억하지?"


츠노몬이 웃으며 말하자, 토코몬은 울음을 삼키고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새하얀 뺨을 따라 떨어지는 한줄기 눈물을 뒤로하고 하늘을 올려다 본 그 디지몬의 입에서는, 자신이 오래 전 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 네가 정말 원한다면,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거야.."


그러자, 그런 토코몬에게, 모든 디지몬들에게 화답이라도 하듯- 

반짝이는 별똥별 하나가 디지털 세계의 밤하늘을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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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루 - 건반

연성/단편 2015. 11. 15. 04:44

타케루 - 건반

2015년 9월 13일


시끌벅적한 공원 한 가운데에는 손때가 묻은 피아노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가끔 아이들이 호기심으로 건드리기만 하던 그 버려진 피아노에, 오늘은 좀 더 성숙한 손가락이 차가운 건반을 훑는다.


천천히, 조용히. 하지만 점점 더 강하고 세련되게.  


금발의 남자아이가 눈을 감고 치는 피아노 소리에 공원에는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자신의 파트너와 다시 만날 그 날을 약속한지 어언 며칠, 몇 달, 몇 년이 지났을까.


And where the road then takes me

이 길이 날 어디로 데려갈지 


I cannot tell we came all this way

말은 못해도 우린 이 길로 왔는데


But now comes the day

이젠 그대에게


To bid you farewell

작별할 시간


천천히 끝나가는 피아노 연주에 맞추어, 하늘을 올려다본 남자 아이의 뺨을 타고 반짝이는 눈물이 흘렀지만,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I bid you all a very fond farewell

그대 모두에게 따뜻한 작별을 고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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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켄 - 과거의 단편

2015년 8월 14일


기억이 잘 나질 않아.


아무리 잘 보관해도, 음식은 결국 상하기 마련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기억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무리 또 되뇌여 봐도, 결국 조금씩 새나가기 마련이니까- 특히 꿈같은 기억이라면 더더욱.


내 아주 어린 시절은 아직도 베일에 쌓여 있다. 짙은 안개 속에서 아무리 손을 휘저어봐도, 나는 더더욱 길을 잃을 뿐.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어둠의 씨앗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다른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형의 죽음 때문에 디지몬 카이저가 되기 전에- 디지털 세계를 구했다는 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뒤죽박죽으로 되어있는 내 머릿속에서 기억나는 건, 내가 전력을 다해 쓰러뜨렸던, 네개의 팔과 거대한 주포를 등에 달고 있던 어떤 악한 디지몬. 어둠의 씨앗이 그것에 의해 내게 심어진 것만은 확실하지만...


그래, 동료가 있었다.


나의 엇갈리는 기억들 속에서도, 내게 늘 손을 내밀어줬던 사람. 

내게 디지털 세계의 존재를 알려줬던 그 사람.


그렇지만 얼굴마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아.


조용히 방 안에 앉아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려고 해봐도, 나는 점점 더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고 있었다.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들. 서로 다른 퍼즐의 조각들을 억지로 끼워맞추려고 하는 느낌.


그 사람에 대해 기억나는 게 거의 없지만, 가끔 나는 꿈을 꾼다.


목에 스카프를 메고 있는 어떤 뾰족한 머리의 남자 아이가, 온 세계를 집어삼킬 듯 뻗쳐오는 붉은 지옥의 손길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처절하게 맞서 싸우고 있는 모습.


비록 얼굴도 보이지 않는 꿈이지만, 나는 안다. 그게 바로 그 사람이라는 걸.

 

무언가 다른 곳, 어쩌면 다른 세계에 가 있더라도,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난 그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내 심장이 그렇게 알려줄 테니까.


"그러니까, 꼭 다시 만날 수 있을거야-"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다이스케를 뒤로 하고 푸르른 하늘을 우러러 보고 있자니, 문득 이름 하나가 머릿속을 맴돈다. 


"료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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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시미야 - 졸업

연성/단편 2015. 11. 15. 04:37

코시미야 - 졸업

2015년 8월 13일


후두두두둑-


"이제 졸업하시네요, 선배."


새하얀 눈송이가 하늘하늘 내리는 어느 저녁, 컴퓨터 책상 위에 걸터앉아 어쩔 줄 모르던 손가락으로 자신의 긴 자수정빛 머리를 쓸어넘긴 여자아이가, 안경을 고쳐쓰며 말했다.


"그러게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흐르는구나- 싶기도 하고."


몇 책상 떨어진 곳에 앉아있던 남자 아이가, 멋쩍은 웃음과 함께 자신의 붉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곧이어 자신 앞에 있던 컴퓨터를 조용히 쳐다보던 그는, 다시 여자 아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컴퓨터부, 이번에도 잘 부탁해요, 미야코 상."


미야코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들의 첫번째 모험에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컴퓨터의 중요성을 깨달은 코시로는 컴퓨터 부를 설립했고, 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여 중학교로 가게 되고 나서는, 미야코가 컴퓨터 부의 회장을 역임했으니까.


중학교에서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코시로는 이제 곧 하늘색 교복을 입고 타이치 선배나 야마토 선배가 그랬던 것처럼 오다이바 고등학교를 들어갈 테였고, 이 노을만큼 붉은 머리의 컴퓨터 천재는 또다시 컴퓨터 부를- 그녀를- 내버려두고 고등학교로 떠날 테였다.


"열심히 하면 따라갈 수 있겠죠?"


미야코가 내뱉은 갑작스런 질문에, 코시로는 당황한 눈치였다.


"선배 말이에요."


"아- 아."


헛기침을 한 코시로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입을 열었다.


"이미 충분히 절 뛰어넘었는걸요. 그러니까 초등학교 때처럼, 이 컴퓨터 부도 잘 이끌어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하는 이야기를 알아듣는 건 미야코 상을 제외하면 기껏해야 켄 군 뿐인걸요."


미야코는 얼굴에 호선을 그려보이고는, 교실의 문을 여는 코시로를 바라보았다.


"안녕히 가세요, 선배."


코시로는 뒤를 돌아보며 미야코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 했지만, 어느새 그친 눈 뒤로 얼굴을 내민 반짝이는 노을에 그만 눈을 찡그렸고, 그 덕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미야코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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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이 - 질투심

2015년 8월 12일


처음엔, 그저 질투심인줄만 알았다.


선택받은 아이가 되기 전부터, 타이치 선배는 나에게 있어서 동경의 대상이었다. 디지털 세계를 여행하며, 나는 자연스레 그와 더 친해지게 되었지만- 그의 일상의 중심에는 늘 당신이 있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금발 머리를 하고,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유명 밴드의 보컬- 난 당신을 싫어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맘에 든 적 또한 없었다. 어쩌면 내가 라이벌이라고 인식하던 타케루의 형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 켄이 타이치 선배의 메탈그레이몬을 조종하던 때, 당신이 선배를 때리는 것을 보고 열을 내기도 했었고.


하지만 내가 어떻게 생각하던 간에, 결국 나는 당신의 문장을 이어받았다. 우정. 그리고 그 문장에 걸맞게, 당신은 모든 사람들과 깊은 우정을 쌓고 있었다- 타이치 선배를 포함해서.


그 둘의 우정은 내가 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깊었다. 하긴, 동고동락하며 세상을 구하다 보면 친해지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 우정이 사랑으로 이어져 소라 상과 사귀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타이치 선배와 당신의 우정은 무언가가 남달랐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시기했다.


내가 동경하는 타이치 선배와, 나보다 더 친하게 지내는 당신이 부러웠다.


그런데, 언제부터 내가 타이치 선배가 아닌 당신에게 집중하게 된 것일까?


알아서 사람의 얼굴을 찾아 렌즈의 초점을 맞추는 카메라처럼, 나의 시선은 언제부터인가 당신에게 가 있었다. 더이상 타이치 선배도, 소라 상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샌가, 나는 당신의 금빛 파도에 휩쓸렸고,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내 눈에는 당신만이 있었다.


그렇지만, 당신의 시선은 왜 나에게 한번도 닿지 않는걸까.


나도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당신은 나를 그저 자신의 동생과 함께 여행한, 자신의 문장을 이어받아 디지털 세계를 구한 후배라고만 생각하고 있다는 거겠지. 당신에게서 느낄 수 있으니까. 나를 바라보고 나에게 말을 건네도, 당신의 시선은 내게 머물러 있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내가 타이치 선배를 닮았다고 종종 말해주곤 한다. 예전에는 그게 좋았지만, 지금은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용기의 문장만을 이어받은 게 아닌, 용기와 우정의 문장을 이어받은 아이인데.


... 그래, 난 아직도 질투하고 있는 것 같다.

그저, 그 대상이 뒤바뀌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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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켄타케 - 비오는 날

2015년 6월 3일


비 내리는 오후. 갑자기 들이닥친 소나기는, 방과 후 축구 시합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이치죠우지 켄의 희망을 빗물과 함께 쓸어내려 가버리는 듯 했다.


젠장. 결승전이었는데.


한숨을 쉬며 쏟아져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쳐다보던 그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 때였다.


"이봐, 이치죠우지!"


"아? 타카이시 상."


"벌써 중학생인데, 언제까지 성으로 부를꺼야."


자신을 내려다보며 얼굴에 호선을 그리고 있는 노란 머리의 아이를 올려다본 켄은, 잠시 곰곰히 생각하더니 씨익 웃으며 타케루의 말을 맞받아쳤다.


"그건 타케루 군도 마찬가지인걸."


"하, 그러네. 나도 익숙하지가 않아서 말야. 미안해."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웃은 타케루는, 무언가를 물어보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가만히 앉아있는 켄을 보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자."


운치있는 빗소리를 배경삼아 가방을 뒤적거리는 금발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던 켄에게 타케루는 무언가를 불쑥 내밀었고, 깜짝 놀란 켄은 자기도 모르게 그가 내민 것을 받아들었다. 그에 손에 쥐여진 것은, 다름아닌 곱게 접혀진 우산이었다.


"엣, 하지만 타케루 군은-"


"아 뭐, 그냥 같이 쓰고 가자고.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


타케루는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켄에게 손을 내밀었고, 켄은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나 우산을 폈다. 아무렇지 안헥 자신의 옆으로 다가오는 타케루를 보고 있던 켄의 얼굴에도, 장난끼 가득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렇게 두 아이가 한 우산 아래에 나란히 서서 교정 밖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켄은 갑자기 타케루의 어깨를 잡더니 자신 바로 앞까지 끌어당겼다.


"엑?"


"아니, 뭐, 젖으면 안되잖아, 타케루 군?"


숨결이 느껴질 것만 같은 짧은 거리-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던 둘은, 자신들이 집에 가야한다는 것조차 까먹어버린 듯 했다.


툭-


켄이 들고 있던 우산이 땅에 떨어졌지만, 둘 중 누구도 다시 집으려 하지 않았다.

마치, 이제 비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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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소라야마 - 카이저

2015년 6월 2일


천공이 핏빛으로 물든 디지털 세계의 어느 밤.


비웃음으로 가득찬 눈매를 가려주던 선글라스를 벗어던진 그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만신창이가 된 아이들의 절망보다 더 칠흑같은 정장을 입고, 철옹같은 검은 왕좌에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그-


디지몬 카이저, 야가미 타이치.


"선택받은 아이라느니, 세계를 구하겠다느니... 한심하긴. 이제 꿈에서 깰 때도 됐잖아?"


땅에 널부러져 있던, 한 때 디지몬 카이저라고 자칭하던 켄의 선글라스와는 확연히 다른 둥그렇고 더 악한 기운을 내뿜는 선글라스를 검은 구두로 자근자근 밟아 부순 타이치가 비열하게 웃으며 말했다.


쓰러져 있는 아이들과 그들의 디지몬 파트너를 내려다본 그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철들지 못한 너희 바보들을 일깨워 주려는 이 리더의 노력을, 이렇게 배은망덕하게 갚으면 안되지."


"타... 타이치..."


전투의 흔적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부서진 땅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소라가 그를 올려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만연했던 미소가 싹 가신 타이치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타케노우치."


타이치가 더 이상 이름이 아닌 성으로 자신을 부르자, 소라는 순간 몸을 움찔했다.


"왜 그래? 이번엔 또 무슨 말로 나를 화나게 하려고? 그 망할 금발 늑대 새끼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 시시콜콜 얘기라도 해줄 참인가? 그럴려고 여기까지 찾아온거냐? 저 쓸모없는 쓰레기 놈들과 함께?!"


야마토의 언급에 한번 더 소라의 몸이 움찔거리는 것을 본 타이치는, 점점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듯 외쳤다.


"이게! 이 모든 게, 누구 때문인데! 사랑이고, 우정이고, 용기고! 다 지랄맞은 개소리에 지나지 않아!!"


거의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인 소라 앞에, 손에 쥐고 있던- 이미 모양도, 색도 바래버린- 자신의 문장을 집어던진 타이치는, 그 어떤 상황에서 부서지지 않던 문장이 주인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 쨍그랑 하고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보았고, 곧이어 자신의 왕좌 옆에서 전투 태세를 취하고 있는 워그레이몬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저, 울고 있는 소라에게서 등을 돌린 채, 천천히 멀어져갈 뿐.


그들을, 자신을 이 굴레에 옭아맨 그녀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직도 차마 끝내버릴 수 없는 자신을 저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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